'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카테고리 없음

허정무 감독의 눈물

샘터 표주박 2010. 6. 28. 08:37

허정무 감독의 눈물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 '마이웨이'의 고스트라이터(대필작가)로 참여했던 일이 있다. 한 달 정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머물며 만난 그곳 축구인들은 1980년대 에인트호번에서 활약하던 한국 축구선수 '융무 후' 얘기를 많이 했다. 네덜란드에서 '융무 후'는 찰거머리 수비의 대명사로 통한다. 1983년 FA컵 준결승에서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가 '융무 후'의 밀착 마크에 시달리다가 그의 얼굴을 팔꿈치로 때렸던 일이 있다. '융무 후'는 허정무 감독이다.

▶허 감독은 '진돗개', '악바리', '호랑이' 등의 별명을 가졌다. 그 허 감독이 어제 새벽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1대2로 패한 뒤 눈물을 보였다. 로봇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과시한 차두리를 비롯한 선수들도 눈물을 흘렸다.

▶경기 후 몇몇 우루과이 선수들이 우리 대표팀 라커룸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축구 경기 후 선수끼리 유니폼을 교환하는 것이 월드컵 관행이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너무 눈물을 흘리며 상심하자 유니폼 바꾸자는 말을 못했던 것이다. 허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고개 숙이지 마라. 너희들과 함께 해 행복했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한국 축구는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됐다. 2002년 132개였던 축구장이 지난해 558개로 늘어났다. 재능 있는 꿈나무들도 속속 배출됐다. 차범근, 허정무의 뒤를 이어 외국에서 활약하는 선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대표팀도 23명 가운데 9명이 해외파였다. 허정무 감독은 그래도 아직 미흡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축구의 장래를 위해선 기술적인 면을 보완해야 하고 해외 경험도 더 많이 쌓아야 한다"고 했다.

▶주장 박지성은 "졌지만 한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태극전사들은 박주영·이청용·기성용·정성룡 등 '젊은 피'들이 주역으로 나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새 신화 창조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그러려면 국내 프로축구와 학원 축구가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 축구협회의 장기 계획과 투자도 필요하다. 우루과이전에서 허정무 감독과 태극전사들이 흘린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눈물이 4년 뒤엔 기쁨과 환희의 눈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