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카테고리 없음

우리 구역장의 기도

샘터 표주박 2010. 7. 5. 17:25




 

 

 
올해 95세이신 홍 헤레나 할머니가 우리 구역에 전입해 오신 것은 5월 말경이다. 
명동성당에서 교적이 넘어와 구역장과 반장이 방문하여 보니 버려진 '치매노인'
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흔적이 역력하단다.
6월초 반모임이 끝나고 몇몇 자매님과 할머님이 기거하시는 집을 방문하였다. 
지하방 문을 여니 검정비닐 봉투에 무엇인가를 가득 담은 쓰레기들이 가득하여 
발 디딜 틈이 없고 악취가 코를 찌른다. 
할머니는 찢어진 신문지 한 장 깔고 그 위에 웅크리고 누워 계시다가 구역장이 
흔들어 깨우니까 마지못해 눈을 뜨신다. 눈동자는 힘이 없고 머리는 산발이고 
냉골 맨바닥에 수건한 장을 베고 계시다. 구역장이 처음 방문해보니 구석구석에 
쓰레기이고 몽땅 썩은 음식으로 어디부터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였단다. 
그 썩은 걸 먹고 지냈다는 말이다. 전날 구역장이 쓰던 담요를 가져다 할머니께 
깔아 드렸으나 그것도 어디에 쑤셔두고 저렇게 찢어진 신문지 한 장에 웅쿠리고 
계시다고.
안쪽에 있는 작은방에는 더 많은 쓰레기가 쌓여있다. 빈 패트병, 심지어 냄새나는 
휴지뭉치들까지 흉물스럽게 산을 이루고 있다. 오랜 동안 가족의 발길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직감적으로 '할머니가 쓰레기를 수집하셨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구역장은 할머니가 곱게 말씀하시는 걸로 미루어 마구 사신 분은 아닌 것 같단다. 
여러 날이 지난 지금도 무엇이든 보따리를 싸고 먹다 남은 음식물을 숨겨 두신다. 
"에 휴... 자식은 없대?"
"아들만 셋이라는데요. 자식에 대해서 일체 말씀을 안하셔요"
이곳에 사신지가 1년이나 되었다는데 여적 누가 돌봤을까? 
교적은 분명 가족이 옮겼을 것이고, 이제 서야 '교회 교적'을 옮긴 속내는 
교우들에게 할머니를 돌보라는 암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구역장은 동회로. 구청으로. 뛰어 다니며 '복지사'가 할머니 집을 방문케 하여 
현장을 보여주고 '복지혜택 수급자'로 선정하여 줄 것을 수차례 당부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최소한 먹어야 할 게 아닌가... 
안타까움에 구역반 자매들이 팔을 걷었다. 아침, 저녁, 점심을 스스로 맡아서 
해다 드리겠다는 자매들이 줄을 선다. 직장에 다니는 말따 자매는 아침 해다
드리고 출근하고, 구역장은 점심을 드리고 운동을 시키고, 말동무 해 드리고
또 한 자매는 저녁에 밥과 반찬을 나른다.  
말따 자매는 할머니를 달래가며, 눈을 속여가며 몰래 몰래 쓰레기를 조금씩 
버리고 일요일엔 목욕시키고 머리도 잘라드리고. 그러기를 한달여... 
구역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매달린 보람으로 이젠 할머니는 고운 모습을 
되찾았다.
일주일 전에는 본당 원장수녀님께서 방문하여 기도도 해 주셨다.
할머니는 수녀님을 보시자 반가워하면서도.... '마음이 슬퍼진다'고 하신다.
비록 치매초기 증상이지만.. 배움도 있으신 것 같고, 무엇보다도 언행에서 
깊은 신앙심이 배어나오는 것이 한눈에 보일정도로 교양도 있으시다. 
..... 가족에 대해 물으면 입을 꼭 다무시는 할머니... 그러나 옛날 이야기를 
물으면 조곤조곤 말씀도 잘하신다. 원장 수녀님의 위로 말씀이 있으셨고 
할머니의 기억을 들춰내려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옛날에 어디사셨어요?"
"응? 어디 살았냐구? 궁정동 40번지"
"궁정동이면 서울이네요"
"그래. 청와대 만큼 좋은 집이였어. 그런데 박정희가 빼앗았어. 내가 벌어서 
산 집인데 빼앗겼어. 내가 박정희도 만나보고 박근혜도 만나서 따졌어."
"뭐하는데 쓸려고 집을 뺏었대요? "
"길 낸다고"
"박정희가 집을 빼앗았으면 돈을 많이 받으셨겠네요"
"돈은 무슨 돈. 고시가격 조금 주고 그냥 다 빼앗았어. 그 좋은 집을 강제로 다 
빼앗기고 지금 여기 시골에 왔어"
궁정동 40번지를 입에 달고 계시는 걸 보면 청와대 부근에 사셨던게 분명한가보다. 
우리가 사는 여기는 시골인 줄 알고 계시는 할머니... 먼 먼 동화속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수녀님들과 살면서 수녀님처럼 기도와 교리공부만 했다고 하신다. 
내가 할머니에게 또 물었다.
"할머니, 수녀님 오시니까 좋죠?"
"좋지. 좋구말구"
"그럼 신부님께 청해서 봉성체 모실까요?"
"내가 예수님께 대들었어. 내가 왜 이렇게 됐냐고. 마음이 불편해. 슬프고..."
"할머니, 그럼 수녀님이 더 좋으세요? 예수님이 더 좋으세요?"
이 순간.... 할머니 얼굴에 경기가 일 정도로 험악해 지시더니..
"그걸 말이라고 해? 비교 할 데에다 비교해야지..."
"네.. 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오늘도 우리 구역장의 기도는 
'주님! 홍 헬레나 할머니, 
복지수급자가 되어 품위있는 마지막을 맞으시도록 도와 주세요'
2010/07/05
-표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