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오늘이 마지막이듯

내 생애 가장 우아했던 식사

샘터 표주박 2004. 7. 6. 07:11





첫 월급을 타던 날, 나는 그녀에게 크게 한턱 쓰고 싶었다. 평소 그녀와 그럴듯한 찻집에서 차 한잔 나누거나 영화 한 편 본적 없었다. 고작 한강변 같은 곳에 앉아 있거나 전화로 데이트를 해 왔던 터였다. 시내 중심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가 코트를 벗고 내 앞에 앉았다. 분위기 좋은 이런 곳에서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양복을 단정히 입은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다가와 메뉴판을 놓고 갔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꽤 부담이 되는 음식값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한 개를 시켜 둘이 나눠 먹자고... 웨이터가 혹시 얼굴이라도 붉히면 어쩌나 지레 걱정이 되어 잠깐 망설이고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그녀가 조용하게 부탁했다. 나는 긴장이 되었다. 내 우려와는 달리 웨이터는 미소를 지었다.

음식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웨이터는 두께만 반으로 얇아진 같은 모양의 스테이크를 두 개의 접시에 담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안도하며 그녀와 눈을 맞추고 웃을 수 있었다. 그분은 딸려 나오는 음식까지 모두 2인분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 주었다. 주위의 멋쟁이 손님들도 우리가 한 개를 시켜 나눠 먹는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분은 시종 편안하고 인자한 미소를 보내 주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먹고 마시는 데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국밥처럼 양이 많고 싼 음식은 사먹어도 냉면집 한번 가 본 적이 없었다. 큰 음식점 앞에만 가면 가격도 알아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피하기 일쑤였다. 한번은 고향 친구가 놀러 와서 큰맘 먹고 명동까지 구경 나갔지만 유명한 음식점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냥 돌아왔다.

당연한 일지만 나는 그녀와 결혼했다. 이제는 나도 넉넉하게 살지만 그녀가 입는 옷은 여전히 수수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맑고 따뜻한 마음을 알고 있기에 잘 차려 입은 그 어떤 여성보다 아내가 좋다. 20여년이 넘은 지금도 나는 그날의 그 우아한 식사를 잊지 못한다.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아내의 마음과 사려 깊은 그 신사의 미소를 떠 올리면 지금도 내 가슴은 따뜻해 온다



글 / 윤학 미카엘(변호사)


<말씀의 이삭에서...>



'오늘이 마지막이듯'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휘어진 손가락  (0) 2004.07.22
우리 함께 가요..  (0) 2004.07.13
구별해야 할 것들..  (0) 2004.06.21
사랑을 담아내는 편지처럼..  (0) 2004.06.12
60년 만에 피우는 꽃  (0) 200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