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오늘이 마지막이듯

여기도 다녀왔습니다.

샘터 표주박 2006. 9. 25. 21:09

 

 

 

연풍 순교 성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을 접하고 있는 문경새재를 넘어서면 괴산군 남동쪽 끝에 연풍면이 나선다. 해발 1,017미터의 험준한 고갯길, 새재의 서쪽 기슭에 연풍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연풍은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 황석두 루가의 고향이며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으로 초대 교회부터 신앙 공동체가 형성돼 있던 뿌리 깊은 교우촌이다. 연풍 마을과 문경 새재의 구석구석마다 선조들의 자취와 피의 순교 역사가 어려 있다. 연풍은 전체가 소백 산맥의 산릉에 속한 험지이고 문경군과 접경지대에 조령산과 백화산 등 소백 산맥의 주봉들이 높이 솟아 있다. 그만큼 험난하기에 예로부터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충청도와 경상도로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나서는 순교자들의 피난의 요로로 일찍이 교우촌이 형성 됐었다. 남부 여대(男負女戴)로 보따리를 싸서 박해의 서슬을 피해 연풍으로 몰린 교우들은 새재라는 천험의 도주로를 이용해 여차 하면 밤을 틈타 험준한 산 속으로 숨어들어 새재 제 1·2·3관문 성벽 밑에 있는 수구문(水口門)을 통해 문경 땅을 넘나들며 모진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연풍에서는 황석두 루가(1811-1866년)성인의 발자취가 빛을 발한다. 부유한 양반집 자손으로 나이 스물에 과거 길에 나섰다가 '천국의 과거 시험에 급제'하고 돌아온 그는 3년 동안의 벙어리 흉내 끝에 가족들을 모두 입교시킨다. 학식과 신앙이 깊었던 연유로 다블뤼 안 주교는 그를 회장으로 두고 성서 번역과 사전 편찬에 종사토록 했다. 뿐만 아니라 신앙에 눈뜬 뒤 그는 정결을 지키는 생활을 해 페레올 주교가 그를 사제로 서품하려 했으나 부인이 들어가 있을 정식 수녀원이 조선에 없다는 이유로 교황청의 허락을 못했다. 병인박해 때는 다블뤼 안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등과 함께 충남 보령군 갈매못에서 칼을 받아 순교한다. 연풍에는 또 한가지 웃지 못할 일화가 전해진다. 병인박해로 한국 교회는 9명의 성직자를 잃었다. 천신만고로 세 명의 선교사가 목숨을 건졌는데 그중 칼레 신부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달레의「한국 천주교회사에 의하면 칼레 신부가 연풍을 지나다가 포졸들에게 발각돼 도망 치다가 붙잡히려는 찰나에 그만 전대가 풀어져 돈이 떨어졌다. 그를 쫓던 포졸들은 돈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틈에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풍 성지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3년 연풍공소로 옛날 향청 건물을 사들이게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3백년이나 묵은 이 건물을 매입할 당시만 해도 이곳이 순교 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매입 후 논과 집터 정리 작업 중에 박해 때 죄인들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된 형구돌이 3개나 발견됐다. 또 1968년 시복식 후 황석두 성인의 고향이 연풍으로 드러남에 따라 성지 개발이 가시화 됐다. 1979년에는 평해 황씨 문중산에 묻힌 황석두 성인의 유해를 확인, 1982년 연풍성지로 이장했다. 연풍성지와 관련하여 선종하신 오기선(요셉) 신부님의 공로를 잊을 수 없다. 매년 2만여 명씩 순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연풍 성지에는 황석두 성인과 함께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등 5인의 성인상과 함께 순교 현양비가 건립돼 있다. 또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동상( 재속프란치스코회 50주년 기념으로 대방동 성 안토니오 형제회와 재속프란치스칸 이셨던오기선 신부님이 세우셨다) 과 국내 최대의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제관을 비롯한 기념관 건립이 진행되었다. 성지 가는 길 고속도로_중부내륙고속도로 완전 개통으로 전국서 1시간 30분이면 순례할 수 있다. 연풍I.C에서 빠져나와 2-3분 이면 도착가능하다. 국도를 이용할 때는 충주에서 3번국도를 따라 남행하면 수안보 온천에 이른다. 수안보에서 계속 3번국도를 따라 12Km쯤 가면 삼거리에 닿는다. 이 지점에 검문소가 있고 34번 국도 쪽으로 800m쯤 가면 연풍성지 안내 푯말을 볼 수있다. -재속 프란치스코 형제회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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