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오늘이 마지막이듯

참기름도 짜고 냉이도 사고...

샘터 표주박 2021. 12. 17. 21:27

 

40년 넘도록 저와 가족의 삶을 보듬던 둥지,

그곳에 살며 익힌 습성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가 봅니다.

 

10시 평일미사 참례하려고 8시 50분경에 집을 나서며

손수레 카트를 끌고 출발했습니다.

 

살던 곳 단골 기름집에서 참기름 한말을 짜면  9병

나오는데 오래전 부터 허리 디스크, 무릎 관절염에

어깨도 시원치않고, 어쩌다 무거운걸 힘들게 들면

꼭 탈이 나더라구요.

...게다가 생머리에 모자까지 쓰니...ㅋ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영락없는 촌 할머니입니다...^()^  

 

 

 

 

 

끌고간 카트는 성전 계단아래 후미진 곳에 세워두고

미사 참례하고  

제 또래 교우 8명이 야고버 까페에 옹기종기 모여앉자

종이 커피도 동참시켜 사는 이야기 꽃을 피우다

끝까지 남은 세사람!

곧 음식점으로 이동하여 맛난 점심을 먹고

한명은 선약이 있어 아쉬워하며 약속장소로 가고

동갑내기 말지나와 저는 기름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카트는 내내 끌고다녔구요...ㅎ 

 

포천서 농사짓는 아우,

저와 본명이 같은 막달레나로부터 해마다 고추, 마늘,

들깨, 참깨, 서리태 등등의 재배한 농작물을 구입하는데 

들깨 두말은 늘 생으로 기름 짜 택배로 보내줍니다.

노오란 맑고 투명한 맛난 생들기름입니다.

 

들기름은 바오로 아침식사때 오메가3 섭취용으로,

국내산 참깨는 너무 비싸 1/2말을 조금씩 볶아 통깨로, 

대신 중국산 참깨로 기름을 내려 아들네와 나누어

아끼지 않고 넉넉하게 사용합니다. 

 

절친인 말지나,

용인 텃밭에서 농사지은 들깨, 참깨가 집에 있다며 

제 단골 기름집을 둘러보자 해서 동행한것입니다.

 

 

 

 

 저보다 먼저오신 할머니 한분이

손수 농사지은 국산 들기름, 참기름, 들깨 계피까지

작업중이어서 4~50분 가량 기다렸는데 

먼저 나온 들기름을 보니 색깔이 너무 검습니다.  

(...저 아까운 들깨... 넘 볶았다...)

 

40년 넘게 거래한 기름집을 교우에게 소개하러 왔으나

'아니다' 싶어 말지나에게 낮은 귓속말로

"들기름 색갈이 노랗고 투명해야 좋은데

넘 볶아 검고 짙어. 용인에서 생으로 짜야겠어"

"그래. 나도 그런 생각했어" 

 

 

 

 

바오로와 동갑인 기름집 사장님이 작업하시는데

자동 볶음통에 제 몫의 참깨가 들어가기 직전에

"아저씨. 지난번엔 아드님이 참기름을 내렸는데요

깨를 너무 볶아 색깔이 검어 먹기가 어려웠어요.

깨를 덜 볶고 짜주세요"

 

사실은 그 참기름 며늘에게 줄 수도 버릴수도 없기에

혼자 다 먹기까지 많이 께름직했었습니다.

 

사장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요즘은 40대 아들이 주로

작업을 하곤 했는데 깨 볶는 자동 타이머를 과하게

조정했지 싶습니다.

 

 

 

 

 

차례가 되어 덜 볶은 참깨가 압착기에 들어갔는데

말지나가 일어섭니다.

"조금만 더 있어. 기름 나오면 한병 가져 가"

"아니야 먼저 갈께. 아들네와 나누면 얼마나 된다고"

눈 인사만 하고는 기어이 나갑니다.

갑자기 가서 '잘가라'는 인사말도 못했습니다.

 

 

 

 

 

작업이 끝난 참기름 9병을 손수레 카트에 담고

차도 따라 걷는데 건널목 파란 신호등이 들어와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가려는 순간에

웬 할머니가 꾸부린채 냉이를 바닥에 펼쳐놓고

소쿠리에 수북히 담는게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부터 길에서 파는 할머니들 나물은 꼭 샀던터라

"이거 얼마에요?"

"삼천원... 어 구역장님이네..."

"어머나. 자매님. 웬 냉이가 이렇게 많아요?"

"네. 시골가서 캐왔어요" 

"깨끗하고 좋네요. 두소쿠리 주세요"

비닐 봉투에 두번 담더니 덤으로 듬뿍 집어 넣으며

"오천원만 주세요"

"아니..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떡해요"

"우리 구역장님인데 많이 드려야죠"

"ㅎㅎㅎ"

 

구역장, 교리반 봉사를 졸업한지가 넉넉히 15년은

넘었는데 아직도 구역장님, 교리반 선생님으로

불립니다.

 

 

카트를 끌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 봅니다.

냉이국을 좋아해서 냉이를 사면 일일이 다듬고

흙을 씻느라 손이 많이 갔는데 할머니는 그 많은 냉이를

어찌 다 다듬고 깨끗하게 씻어 팔다니....

참 부지런한 할머니십니다.

 

 

 

 

할아버지는 서울자택에만 계시고

할머니는 시골 오가며 농사일도 하시고

봄철엔 산나물도 뜯어다 팔곤했었는데

이 냉이는 아마도 시골 밭 한귀퉁이에

'심고 수확했을 거라'

추측해 봅니다.

 

시골 오가며 농사하시느라 늘 바쁘셔서

구역 반모임에 참석을 못하시던 할머니!

대단히 부지런한 놀라운 근력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1/12/19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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