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만큼 행복한 이유
8월 한달 동안 무려 20일간이나 하늘이 울먹이었다니. 무엇이 그리 못마땅하였기에, 무엇이 그리 비통하였기에 6월 하순 부터 그리 오래도록 눈물을 뿌리고 있을까.
그런 것도 모르고, 속절없이 삼복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라 반겼고,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들으며 건반에 내려앉는 물방울의 영롱한 유희를 그려낸 신비스런 선율에 심취 했었나보다. 이런 것들이 실종된 여름을 애타게 기다리는 농부의 눈물이 될 줄이야.
이제라도 파란 하늘이 열리고 야윈 들판에 햇살이 쏟아지기를, 태풍의 이동 경로가 빗겨 가 주기를 고대하는 마음 뉘라서 없겠냐만. 하늘과 바람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하시는 일이기에, '패인 벼이삭이 영글고 과실들은 과즙을 담아내는 황금물결 넘실대는 결실의 계절을 허락해 주소서.' 겸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지.
햇살에 굶주렸던 빨래도 오랜만에 옥상에서 춤을 춘다. 늘 그랬듯이 서편 하늘 끝자락, 도봉산과 불암산과 맞닿은 곳에 눈길이 머문다. 얼마 전 까지만 하여도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던 스카이라인이 삐죽삐죽 솟아 오른 아파트 군락에 허리가 잠식되고 말았다.
우리 집 옆에서도 작은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재건축 아파트를 짓는 둔탁한 망치소리가 현기증이 나도록 머리를 흔들어 댄다. 하늘에 닿을 것 같은 키 큰 타워 크레인이 턱 앞에 우뚝 버티고 서서 '성질 나면 이거 너네집 옥상에 확! 떨어뜨릴 꺼야!' 하며 호령하듯 흉측스런 몰골로 머리 위에서 반경을 그린다.
3층 철근을 심고 있으니 머지 않아 그나마 허리 잘린 스카이라인조차 가려질 것이고. 해질 녘이면 서쪽 하늘을 물들이던 낙조의 아름다움도 시멘트 벽 뒤로 숨어버릴 것이 아닌가.
먼 산, 먼 하늘 끝에 자연이 그려놓은 단아하고 소박한 삽화 한 점. 그 앞에 설때 마다 다른 느낌으로 그려지곤 하였지. 마음이 고적할 땐 가난한 시인이 처럼 탈세상의 자유로움과 애잔한 그리움을 읊조리기도 하였고, 세상사에 상처입은 내 영혼을 어린아이를 대하듯 다독여 주며 '사색의 놀이터'에서 어린 왕자의 손을 잡으라고 가교를 놓아 주었다. 뿐만아니라 세속의 먼지 층을 털어 내어 오지 항아리 담아 곰삭였고, 그 항아리에 걸터앉아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에서 여왕 부럽지 않은 행복을 만끽하던 곳이다.
믿었던 친구가 등을 보였을 때는. 이곳에 올라와 세상물정에 어두운 '바보'라고 내 어리석음을 嘆息하며 울먹이기도 하였다. "좋은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친구가 되는 것" 이라는 에머슨의 말을 백 번, 천 번 되뇌인 고뇌의 시간을 거쳐 여유로움과 관용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돌이켜 보면 내 우울증을 걸러내 준 '정화의 터' 이곳 하늘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지싶다.
사색의 즐거움으로 삶의 에너지를 충전 받던 이곳이 아파트 숲에 묻히면 푸근하고 정겹던 '내 사색의 터'는 영영 사라지고 말것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사람으로 채우면 된다고 하지만, 하늘 자락을 빼앗긴 공허의 자리는 무엇으로 메우나!
나도 머리에, 어깨에 붉은 띠를 두르고 '내 스카이라인 돌려주세요!' 큰 글씨로 쓴 피켓 하나 만들어 불끈 쥔 주먹에 힘을 주어 볼까나. 아니면, 어느 청사 앞에서 一人 沈默示威라도 해 볼까나. 일조권처럼 스카이라인도 민원으로 보호될 수 있다면 기꺼이 파수꾼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아! 아! 옥상에서의 사색이 '내가 그녀 보다 행복한 이유'중 하나였는데.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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