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幻想 속의 純粹美人

샘터 표주박 2003. 8. 22. 15:22






回 想


신이 당신을 끌어당기네

가늘고 긴 목,
하늘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네
신은 이미 알아보았네.

아름다운 당신,
당신의 시선에 위로 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신이 이미 입맞춤한 당신의 긴 목
지금은 이승의 어디에도 없는...

          -리처드 아베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숙부님은 6.25 동난 때 부산으로 내려가신 후
아예 그곳에 눌러 앉으셨다. 일년에 몇 차례 학회나 그밖의 행사로
서울에 오시곤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집에서 거하셨고, 의복
손질에서 부터 침구를 챙겨드리는 잔시중은 늘 내 몫이었다.

근 40여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늦은 시각, 거나하게 취하시어 집에
오셨다. 예전과 다름없이 숙부님 침구를 펴 드리고, 자리끼를
머리맡에 두고 나오려는데, 당신이 만취하지 않았음을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말씀을 하신다.

"외국 여배우 중에서 누구를 좋아하니?"
전혀 예기치 못한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드리 헵번을 좋아합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음... 청순하고 환상적인 오드리 헵번?... 그런데 말이다 헵번은
섹스어필이 없어...여자로서는 말이야..." 
말끝을 맺지 못하고는 이내 코 고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엄하시고 지엄하시기 이를
데 없으신 숙부님이시기에 뵈올 때마다 언행 하나에도 여간 조심
스러운게 아니었는데, 아무리 취중망언 이라 할지라도 대학생 조카에게
'섹스 어필..云云..' 하시다니. 그 당시에는 사회통념상 금기시 여기던
용어 이었으므로 무척이나 당혹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에는 외로우신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영화관에
꽤나 드나들었다. 인기 절정이던 남인수. 김정구의 무대 공연도
따라갔던 걸로 기억된다. 상급학교에 진학하여서는 외국영화에 맛을
들여, '로마의 휴일'이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오드리 헵번의
환상적인 매력에 흡입되어 그녀의 영화를 거의 보았다싶다.

강산이 몇 순배 회전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본다.
그때는 당혹 감으로 받아 들였던 '취중진언'은 대쪽같던 숙부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남성의 속성' 단면이었을 거라고 이해하고 싶다.
알코올의 마술에 걸려 대학생 조카딸에게 여지없이 들켜(?) 버린,
마리린 몬로의 백치미와 풍만한 가슴을 더 선호했을 거라고...
'질펀한 교태'를 더듬던 외로운 방황이었을 거라고.

'오드리 헵번의 눈은 얼굴의 반'이라고 비유되기도 하였고, 도톰한
광대뼈는 '동양의 피'를 의심케도 하였을, 그녀만의 묘한 매력---
스크린에서의 그녀는 언제나 '天使의 모습' 그대로 였다.

우리나라에도 뛰어난 여자들은 많다. 書畵에 능하고 인품이 출중
하였던 신사임당.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한 상록수의 실존 인물인
최용신(崔溶信)등... 어쩌면 그들은 남성 우위의 뒤안길에서 한이
서린 한 폭의 '수묵화' 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을 '久遠의 女人'이라 칭송하지만. 역사 속의 인물로, 소설 속의
인물로, 늘 멀게만 느껴졌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오드리 헵번은 환상적인 매력으로
'永遠한 久遠의 여인'으로, '幻想 속의 純粹美人'으로, 내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부모의 이혼과, 나치 하에서 심지어는 죽음에 몰리기도
했었다고.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명장 오스카 와일드 감독에 의해
'로마의 휴일'에 픽업되기까지 단역을 거치며 인생의 굴곡을 겪기도
하였다고...

두 번의 결혼 실패는, 마지막 인생의 동반자와도 결혼이란 형식으로
묶이기보다는 자신이 꿈꿔왔던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
그와의 우정을 고집하였다고 한다. '유니세프 활동'으로 전 세계
기아들을 돌보며 자신의 마지막 삶을, 마지막 사랑의 불꽃을,
'완성된 사랑'으로 승화시켜 보여 주었다고나 할까.

"그 아이는 그냥 거기서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어요."
전혀 꾸밈이 없는, 너무나 아름다운, 진솔한 말 한마디.
'삶의 아름다움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되돌려 준 헵번.

1993년 1월 20일. 아카데미가 '인도주의상'을 마련한 날.
직장암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사려 깊고 겸손하고 우아했던 배우로,
아니, 삶의 마지막 모습이 더 고운 아름다운 여인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숙부님의 11주기를 맞이하여,
'너무도 인간적인 속성'을 노출시킨 취중진언을 살며시
끄집어내어 미소를 지어 본다--


-표주박~

'표주박의 散文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만큼 행복한 이유  (0) 2003.09.03
고독!...그리고...  (0) 2003.08.30
듣고 싶은 말 한마디  (0) 2003.08.04
처녀들 처럼  (0) 2003.06.23
하얀 손의 작은 거인  (0) 2003.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