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초대 합니다 나는 가을로 달리는 기차의 승무원입니다. 이 기차는 가을이 머문 발자국을 따라 달립니다 가을빛 물들어 가는 산 그림자가 가을 물감을 푼 수면에 거꾸로 누워있고 오색으로 채워진 강물에 걸린 다리 위를 기다란 몸체로 낮은 기적을 울리며 달립니다. 이 기차는 일년에 단 한 번, 대청봉 정상에서 출발하므로 시월 상순에 운행됩니다. 부지런하신 분은 여름자락을 밟고 기다리기도 합니다. 이 기차는 침묵으로의 여행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휴대폰도, 색안경도, 신발도, 시계도, 술병도 사양합니다. 초록들의 누드를 위한 화려한 전야제에 초대되었으므로 세속의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벗어보자는 취지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자는 것이지요. 호젓함과 화려함이 수놓인 열두폭 비단 자락에서 원초적인 황홀경에 흠뻑 취해 보자는 것이지요. 뭇 사람들이 남기고 간 투명한 가을을 잔잔하게 담아낼 마음의 렌즈만 소지하면 됩니다.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산천을 바라보노라면 먼 기적 소리에 묻어온 첫사랑의 하얀 미소가 빈 들 한가운데에서 억새처럼 흔들리다가 홀연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은 예감입니다. 머리를 풀고 내 품으로 달려들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무릎까지 차 올라 철벅거리는 단풍 터널을 지나 아득한 추억이 채색되어 있는 간이역에서 잠시 머물기도 하겠지요. 그러노라면, 삶의 편린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일어나 붉게 타오르는 노을 속으로 침잠하기도 하겠지요 피안의 세계에서 시심(詩心)에 젖다 보면 어느덧 시의 순례자가 되기도 하겠지요 계절이 가꾼 길을 따라, 길 위의 길을 따라, 낮은 자리로 이끄는 적요 속에서 미지의 역을 향해 세월을 밀어내고 싶은 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기에 이 가을 속을 무작정 달리고 싶은 지도 모르겠습니다 게 누구 없나요? 나와 동행하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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