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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이듯

값진 우정

샘터 표주박 2006. 7. 10. 19:42
[자선(慈善)의 경제학] 300억달러보다 값진 우정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25세 나이 차에도 15년째 친구, "자본주의는 빈곤 치료 못한다" 이구동성

버핏, 게이츠 재단에 재산의 85% 기부.. 게이츠는 버핏 조언으로 후진국 자선 눈 떠


▲ 작년 8월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브릿지 게임 지역 예선에 함께 참가한 게이츠와 버핏.




워런 버핏(75)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006년 7월부터 300억달러가 넘는 자신의 재산을 빌 게이츠(50)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부부의 자선재단에 기부하기로 해 두 사람 간의 우정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게이츠 회장은 세계 부자 랭킹 1위이고, 버핏 회장은 2위이다. 1위와 2위 부자라는 점 외에는 별로 비슷한 구석이 없는 듯이 보이는 금융인과 소프트웨어 전문가는 25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15년째 우정을 나누고 있다.



▲ 오랜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워런 버핏(왼쪽)과 빌 게이츠.


버핏과 게이츠가 처음 만난 것은 1991년. 일만 하던 게이츠는 어머니의 권유로 버핏과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가 참석한 모임에 동석하게 된다. 당시 게이츠는 버핏이 금융전문가일 뿐이라고 생각해 모임에 참석하길 원치 않았다. 같이 있어 봐야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딱딱한 금융이론이나 용어만 늘어 놓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명사들의 자리이므로 한번 참석해 보라고 권유했고 모임 참석은 예상보다 큰 수확을 가져왔다.

버핏과 게이츠는 모임에서 게이츠의 관심사 중 하나인 컴퓨터 회사 IBM의 장래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게이츠는 금융 이외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부문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는 버핏에게 놀랐다. 더 나아가 버핏은 게이츠에게 세계의 빈곤 문제를 심층 분석한 1990년대 초반의 세계은행 보고서를 읽어 보도록 권했다. 이 보고서는 게이츠가 후진국에 대한 자선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버핏이 게이츠를 자선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게이츠가 사업상 후진국을 여행할 때마다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이후 버핏과 게이츠는 사업상 동료이자 친한 친구로 지내왔다. 두 사람은 함께 베이징으로 휴가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온라인 브리지 게임을 했다. 수시로 개인적이거나 사업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견해를 주고 받았다. 또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분을 갖고 있고, 게이츠도 버크셔 해서웨이에 개인 지분을 갖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워싱턴포스트의 이사이기도 하다.


▲ 지난 6월 25일 워런 버핏은 310억 달러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오른쪽은 게이츠 부부.



두 사람의 개인적인 친밀도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빌 게이츠는 아내 멜린다 게이츠와 사이에 아이를 3명 두고 있다. 약혼 때 게이츠는 아내와 함께 버핏의 고향인 네브래스카 오마하로 날아갔다.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계열 보석가게인 보심스에서 게이츠를 만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빌, 자네가 멜린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혼할 때 전 재산의 6%를 결혼반지 사는 데 썼다네.” 수십억달러의 재산가였던 게이츠는 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게이츠의 딸은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계열사인 케이크 회사 ‘데어리 퀸’에 깊은 애정을 보이자 그를 ‘데어리 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친분관계를 보여주듯 지난 6월 26일 뉴욕 시립도서관에서 열린 기부 관련 기자회견에서 버핏은 빌 게이츠 부부와 함께 등장, 친숙한 관계를 보여줬다. 버핏은 자신의 기부금 374억달러 가운데 약 310억달러를 게이츠 부부가 운영하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면서, 게이츠 부부 중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재단 운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명과 같은 재산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게이츠 부부의 성실성과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


사실 버핏은 그 동안 죽은 뒤에야 상당금액의 기부를 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고 그의 기부금은 대부분 아내의 재단에 넘겨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아내가 살아 있을 당시 나는 돈을 버는 데 더 능력이 있고, 아내는 돈을 쓰는 데 더 능력이 있다는 데 서로 공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오래 살면서 자선사업을 할 것으로 생각한 아내 수전이 2004년 세상을 떠나면서 기부를 앞당기게 됐다. 아내의 죽음 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재산을 기부하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섰고 게이츠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처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디애나대 자선센터 진 템플 소장은 “버핏이 자신의 이름을 단 새로운 재단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25세나 아래인 게이츠에게 돈을 맡긴 것은 이 돈을 제대로 사용할 사람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버핏과 게이츠의 관계에서 사업은 핵심이 아니었다. 둘은 햄버거, 대학 미식축구 경기 등 소박한 일에 대해 관심을 공유하고 때로는 복잡한 수학문제를 푸는 고상한 지적활동을 하면서 유대관계를 형성해 왔다. 버핏은 게이츠에게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게이츠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조금 샀다. 미국의 기업사에서 보면 이해관계가 같은 기업인들끼리 갈등을 벌이는 일은 숱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들의 관계는 매우 이례적이다. 주변사람들은 이들의 유대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든 원동력은 재산상속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분석한다. 뉴욕타임스는 “버핏과 게이츠는 자신들을 부자로 만든 자본주의 체계가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버핏은 뉴욕에서 가진 기부 관련 기자회견에서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부유층 자제들은 행복클럽의 회원일 뿐”이라고 비판한 뒤 “나는 왕조적 부를 신봉하지 않는다”며 부의 상속에 반대 입장을 명백히 했다.

부자들이 사회에 대해 큰 책임을 갖고 있고 부의 상속에 반대한 점은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2008년 은퇴 계획을 발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과 더불어 나는 거대한 부라는 선물을 얻었다”며 “이 거대한 부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며 이 부를 사회에 되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이 배운 성공의 노하우를 자선재단에 적용해 볼 것이라며 나머지 삶의 주요 목표를 부의 사회환원에 뒀다.

미국 사람들은 버핏의 기부 결정보다도 버핏이 자신의 기부금 대부분을 게이츠에게 넘겨준 데 대해 더 놀라워한다. 이는 게이츠에 대한 그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예컨대 월스트리트의 금융황제인 샌포드 웨일 전 씨티그룹 회장이나 헨리 폴슨 전 골드만삭스 회장도 자신의 재산을 앞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부(巨富)들은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돈을 쓴다. 하지만 버핏은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에 자신의 자금을 넘겨줬다. 어쩌면 경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경쟁을 피하고 합병의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기부 방식은 버핏을 성공으로 이끌어 온 그의 투자기술과 연관된다는 해석도 있다. 버핏은 그 동안 자신의 투자 노하우와 관련, 최고의 기업경영자를 찾아서 그들에게 투자한 뒤 그들이 일을 하도록 방해하지 않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이 투자방식을 게이츠 부부에게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핏은 뉴욕의 기자회견에서 “만일 당신이 재산을 축적했다면 아는 사람 중에 당신보다 이 재산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나는 그 동안 자선의 명수를 찾아왔으며 이제 이 재산을 넘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프 내기를 할 때 누구든 최고선수인 타이거 우즈에게 돈을 걸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재산 대부분을 아내 명의의 수전 톰슨 버핏 재단에 기부하지 않고 게이츠 재단에 넘긴 이유는 게이츠 재단이 규모도 크고 운영 역량도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버핏은 이미 1년 반 전에 자신의 재산을 게이츠 부부의 재단에 양도하겠다는 의견을 게이츠에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진국의 의료복지 향상에 주력하는 게이츠 재단의 활동에 매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수개월 동안 구체적인 기부 방안을 논의했다. 게이츠는 처음에 이러한 제안을 받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버핏과 게이츠는 둘 다 지독한 일벌레이다. 하지만 생활 스타일은 좀 다르다. 버핏은 1959년에 3만1500달러를 주고 산 고향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집에 여전히 살고 있다. 그는 게이츠에게 자기 집에 와서 오마하 지역의 브리지 게임 경기에 참석하도록 수시로 권유한다. 이에 반해 게이츠는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주변의 워싱턴 호숫가에 1억달러짜리 대저택을 짓고 살고 있다. 그는 세계여행을 즐겨 1995년에는 버핏에게 함께 중국 여행을 하자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 가운데 친구와의 협력과 우정은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두 사람이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은 개인적인 체험상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시애틀의 성공한 변호사의 아들인 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중퇴한 뒤 죽마고우인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창업했다. 그리고 대학기숙사 룸메이트인 스티브 발머 CEO(최고경영자)와 함께 경영을 맡아 회사를 현재의 위치까지 키워 놓았다. 발머는 2000년 게이츠가 이사회 회장이 되면서 CEO를 맡아 일하고 있다.

버핏 또한 친한 친구 찰스 멍거와 수십 년 동안 함께 일했다. 그는 한번 믿은 친구를 끝까지 믿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인생 경험을 통해 두 사람은 지속적이고 창조적인 파트너십의 힘을 믿게 됐다. 버핏은 “친구 찰스와 사업상 멋진 파트너 관계를 갖고 있었다”며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일을 할 때 얼마나 큰 것을 이룩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버핏은 앞으로 게이츠 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게 된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일에서 손을 떼고 자선재단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예정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화제에서 앞으로 자선사업이 차지할 비중은 점점 커지게 됐다. 어쩌면 버핏의 대규모 기부와 두 사람의 우정에 따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앞으로 ‘게이츠 앤 버핏’ 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김기훈 조선일보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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