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청중 대부분은 연주시간에 전에 객석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다가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였다.
하지만 그 날 따라 웬일이었을까? 연주회장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 뜨개질
하는 할머니, 옆 사람과 잡담하는 사람, 그리고 큰 소리로 기침하는 청중도
있었고, 이에 신경이 곤두선 지휘자 스토코프스키는 연주를 멈추고 뒤로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청중 여러분, 스포츠는 관중의 응원과 함성 그리고 비난 속에 진행됩니다.
관중의 큰 소리에 선수들은 힘을 얻습니다. 그림은 누가 보던 말던 화가가
자신이 본 것을 캔버스에다 옮기는 예술행위입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은
절대 엄숙한 공간 속에서 그려내는 예술입니다. 따라서 소란한 가운데서는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조용하시던지, 내가 지휘를 그만 두던지 해야겠지요."
청중은 조용해졌고 연주는 계속되었다.
영화를 좋아하셨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으로 본 서양 영화는
초등시절 디애나 다빈이 주연한 흑백영화, '오케스트라의 소녀'였다.
돌이켜보면 유명한 거장의 음악을 열 살을 갓 넘겼을 즈음에 만나다니.
어머니 덕분에 크나 큰 행운을 누렸지 싶다.
자막을 읽어내기에도 힘겨운 꼬맹이 눈에도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흩날리던 지휘자의 모습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스토코프스키의 명성을 알 턱이 없었지만 파아란 눈의 티 없이 맑은 소녀의
눈동자에 새겨진 심청이의 효심 정도는 느낄수 있었고, 어른들을 따라
박수쳤던 기억은 반세기를 훨씬 넘긴 지금도 생생하다.
세월이 흐른 후, 거장 스토고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텔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라는 걸 알고는 좋은 영화를 보여준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으쓱대기도
했었다
영화의 원제목은 'one Hundred Men and a Girl'영화에서 주인공 소녀는
금관악기 주자였던 실업자 아버지를 위해 당대의 명지휘자 스토코프스키를
찾아간다. 소녀는 우여곡절 끝에 그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이 대가를 '
실업자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모셔온다는 휴먼 스토리다.
모차르트의 '기뻐하고 환호하라'중에서 '알렐루야'와 마지막에 부른 '
축배의 노래' 는 다시 보고 싶은 장면들이다.
물론, 스토코프스키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이 영화의 격조를 높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거장 스토코프스키는 배우 뺨치는 연기를 펼쳤고, 그는 이후에도 디즈니의
<환타지아>와 같은 에니메이션 음악에도 참여하였으니 음악가인
동시에 '광범위한 예술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혹자로부터 '청중 유치 작전의 일환이다' 는 비평을 듣기도 하였으나
거장의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행운인가.
그의 전성기 때의 소리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백미.
어머님의 1주기를 앞두고 생각나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04/10/28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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