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네

샘터 표주박 2004. 12. 30. 03:10




 



내가 태어난 1945년, 乙酉年이 하루 지나면 다시 열린다.
36년간의 치욕에서 벗어난 해이기에, 45년에 태어난 이들을 '해방동이' 또는
'복덩이'라 불렀다. 나라를 되찾은 주권국가 '대한민국' 광복 첫 해에 呱呱聲을
울렸으니 하느님의 은혜를 듬뿍 받은 '축복동이'가 바로 우리들인 셈이다.

 



'해방동이'라는 자랑스런 이름으로 살아 온 지난 날들. 돌이켜 보면,
이념의 대립으로 납치당하신 아버님의 얼굴을 허공에 그리며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고, 동족상잔의 6.25의 비극과 참화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며 가난과 맞섰다.
이어 4.19와 5.16, 5.18의 골 깊은 격변를 겪어낸 세대로 '해방동이'라는 이름값의
무게가 아직은 멀기만 한데,  이제 十干十二支를 두루돌아 다시 乙酉年을 맞으니
그 소회가 어찌 없을손가.

 



며칠 전,
새 달력을 펼쳐놓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음력을 찾아 제삿 날 표시를 하다가
음력 삼월 열나흩 날. 작은 글씨 위에 올라앉은 4월 22일에 시선이 멈추고 말았다.

 



내 생일은  양력 5월 25일로 그날만은 어김없이 미역국을 먹는 날이다.
작년에 작고하신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아버님이 동경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병원 개업을 준비할 즈음에 내가 태어났고, 동경 유학시절에 본 첫 아들 오빠보다
내게 더한 사랑을 쏟으셔서 아버님이 손수 출생신고를 하였다 전해 들었다.

 



납치되신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질 즈음인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어쩌다가 친구가 생일이 언제냐고 한 마디라도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양력으로 출생신고를 했대. 그래서 양력 5월 25일이야"

양력 생일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라 묻지도 않은 아버지의 존재까지 자랑스럽게
소리높여 힘주어 설명하곤 했다.

 



양력과 음력, 윤년과 윤달과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면서 부터 점차로 내 생일에 대해
의구심이 일기시작했다.  어머님에게 내 양력 생일이 진짜 맞냐고 물으면

"아버지가 하신 일이니 틀림없다!"

라고만 말씀하실 뿐,  더 이상 명확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어머님이 기억하시는
음력과 아버님이 신고하신 양력의 간격이 70여일이라니. 
어린 나이에도 뭔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철이 들고부터는 생일에 대한 아집이 생겼다. 뿐만아니라
그 시절 아버지가 좋아한 인기 절정의 일본 여배우 이름에서 따왔다는 촌스런
내 이름과 아버지가 남겨주신 의혹 투성이 생일에 '사랑의 증표'라는 의미 부여로
의구심과 촌스러움을 포장하며 지내왔다.

 



인터넷에서 알게된 동갑네 생일도 나와 같은 달이었는데 그의 생일과 내 생일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에도

"내 생일은 약력 5월 25일. 음력 3월 14일"이라고 끝까지 우겨댔다....ㅎ

 



음력 삼월 열나흩날은 어머님의 산고를 통해 세상을 얻은 날이니 틀림없지 싶고.
그렇다면 아버님께서 출생신고시 날자를 잘못 기록했다는 말이된다.
젊은 엘리트(당시 30세, 동경대 의학부 졸업) 아버지였는데 왜 그랬을까?
출생신고 한 날일까?
아님 병원 개업일이 었을까?

이념의 희생자이신 아버님만이 당신딸 생일이 5월 25일인 연유를 아시겠지요?


04/12/30
-표주박~
 

지난 한 해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더 큰 福 받으시고
더 큰 幸福 누리시기를 
빌겠습니다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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