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서서히 자라나는 정
낯 모르는 사람끼리
처음으로 만나서
무슨 정이
그렇게 샘물같이 솟아난다냐
사람의 정이란
나무 키우는 것 한가지라
그저
성심껏 물주고 보살피고 믿어 두면
어느새 잎사귀도 나고 꽃도 피고
언제 그렇게 됐는가 싶게
열매도 여는 것이다.
- 최명희의 <혼불> 중에서 -
공기 같은 사람이 있다.
편안히 숨쉴 땐 있음을 알지 못하다가
숨막혀 질식할 때 절실한 사람이 있다
나무그늘 같은 사람이 있다
그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땐 모르다가
그가 떠난 후
그늘의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이런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매일같이 만나고 부딪는 게 사람이지만
위안을 주고 편안함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은 몇 안 된다
세상은 이들에 의해 맑아진다
메마른 민둥산이
돌 틈을 흐르는 물에 윤택해지 듯
잿빛 수평선이
띠처럼 걸린 노을에 아름다워지듯
이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덜 무서워한다
조재도 시집『사십세』에서
삶의 나무에
성심껏 보살피고 물을 주다보면
어느날엔가는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잿빛 수평선이 띠 처럼 걸린 그 날,
"공기처럼 살았노라...."
회고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오늘은 내일의 전주곡,
힘차게 페달을 밟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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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22
-표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