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회갑 나들이

샘터 표주박 2002. 3. 13. 00:17


 



2년 전의 일이다
7월 초여름으로 접어들자 마자 바오로가

"이번 여름 피서는 회갑기념으로 아이들하고 함께 가족 여행이나 떠나자"
"좋은 추억이 되겠네요 의미도 있구요.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라고 말할께요"

지난 몇 년간 바오로와 나는 피서를 가지 않았다.
큰 녀석과 작은 녀석이 한달 간격으로 군 입대를 한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지만
IMF로 퇴직하기 까지 나도 조그만 무역회사에 적을 두고 있었기에 바오로와
휴가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휴가때면 오히려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나
하고 음악이나 들으며 빈둥대고 싶었다 라는 표현이 더 솔찍했다.
출근하여 회사업무에 매달리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산더미 같은 가사일이 또
내 몫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다부지지 못한 나는 이미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일상의 생활에서 누적된 피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깜빡이 신호음을 보내주었지만
그땐 몰랐다. 곧바로 퇴직과 더불어 두번 수술을 받기도 했으니까..

바오로는 가사일에 전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기에 무더운 삼복 더위에 나가
봐야 시중 들기는 매한가지이므로 아이들이 군에서 땀 흘리고 있는데 에미 애비는
'팔자 좋게 놀러 다닐 수 있느냐' 는 그럴사 한 핑계를 대며 회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도 제대를 하였고 더구나 "회갑 여행" 이라는 단서를 부치니 더
이상 무어라 핑계를 댈 수도 없지 않은가?
아이들에게는 아버지 휴가에 맞춰 3박4일을 비워두라고 미리 일러두긴 했지만
내심 염려되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7월 말부터 10여일간은 휴가 절정기이므로 아이들도 제각기 학교와 교회. 그리고
소속단체 등 나름대로 하계수련회가 마련되어 있을 터이므로 어찌 보면 우리보다
더 빡빡한 일정이 잡혀 있겠다 싶어 미리 미리 다짐을 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늘 병약했던 아버지를 상기 시키며 혹여 이번 회갑 여행을 놓치면
'평생의 한' 으로 남을 수도 있음을 누누이 일러두기까지 했다
"회갑 기념 가족 여행" 이란 말에 며칠 고민(?)한 듯...
큰 녀석으로 부터 드디어 대답을 얻어 냈다

"2박 3일은 짬을 낼 수 있어요. 그러나 마지막날 저녁 다섯시 회합에는 참석해야
살레시오 (중복장애자) 봉사에 차질이 없거든요"
"그래, 떠날 때도 새벽 4시에 출발하니까 집으로 올 때도 새벽 4시 쯤에 출발하면
차가 밀릴 것을 감안 하더라도 충분할꺼야"
"이번엔 화진포는 나중에 들리고 다른곳도 한바퀴 돌아요"
"그러자꾸나"

우리 가족은 매년 한곳만 찾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우리 집에서 한강을 끼고 양평을 지나 홍천으로 내달리면 어느덧 설악산이
품으로 달겨들고 산모롱이 몇 굽이 돌아들면 동해안 해변 그것도 화진포가
바로 눈앞이다. 일 삼아 손꼽아 보니 근 15년 정도는 화진포 한군데만 다닌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화진포의 주변 경관이 오죽 빼어났으면 김일성 별장이
있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 별장이 있겠는가?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솔숲이 펼쳐저 있어 조용하고 아늑한 낭만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다. 게다가 호수와 깨끗한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곳이 화진포다
동해안 최북단이기에 아직은 덜 개발된 곳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화진포에서 하루 한 나절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설악계곡에서 하룻밤 몸을 식히고
돌아오면 어느듯 여름이 저만치 달아나 버리곤 했었다.
해마다 떠날 때는 다른 곳을 기웃거려 보다가도 어김없이 다시 차 머리를 돌리며
"여기가 제일 좋아" 라고 버릇처럼 중얼 거리는 융통성 없는 우리부부다
화진포에 당도한 시간은 오전 10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구름이 살푼 낀 날씨여서 백사장에서 우리 네식구는 편을 갈라 피구와 파도타기,
밤에는 모래밭을 거닐며 삼부자가 군에서 겪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진부령으로 숨어들었다.
계곡을 끼고 얼마간 달리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퍼런 물이 집채만한 바위를
굴려 내릴 것 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굽이굽이 휘돌아쳐 감아 내린다.
이야기를 하려면 90세 노인에게 말하듯 귀에 대고 소리소리 언성을 돋아야 들릴
정도이다

"야! 이렇게 좋은 곳이 여기에 숨어 있다니!"
"아니 저 시퍼런 물살 좀 봐! 저렇게 집채만한 바위를 굴렸네"

우리 가족4명이 이구동성으로 함성을 터뜨렸다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같이 주변을 한 바귀 돌아보고 온 바오로가

"방갈로는 없고 주차비만 내면 된대"

우리는 차를 몰아 마을 주민들이 관리하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 간이 야영장으로
들어섰다
상수도 시설도 그런대로 마련되어 있고 주차장은 자갈도 깔아 제법 정갈했으며
아담하게 꾸며 놓았다. 이미 원색의 텐트가 20여개쯤 옹기종기 모여있고 이삼십명의
아이들은 허리춤에 쥬브를 두루고 시퍼런 물살을 거스르며 여기 저기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 텐트를 싣고 온 것이 이렇게 요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족도 서둘러 짊을 옮기고 아이들은 텐트를 치고 나는 집에서나 나가서나
늘 취사담당 인지라 능숙한 솜씨로 저녁을 짓는다

화진포에서 바비큐처럼 달구어진 열기를 식히려 물에 들어간 삼부자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작은 행복이다. 작은 녀석은 아버지 어깨에 드리워진 타월에
열심히 물을 퍼 올리며 아버지 등짝을 식혀주고 있었고 큰 녀석는 저쪽 아래에서
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시퍼런 물에 몸을 절반쯤 담그고 웬 아저씨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후에 돌아온 큰 녀석에게

"아는 사람이니?"
"아니예요"
"그래? 하도 오래 이야기하기에 난 아는 사람인가 했지"
"저 아저씨도 서울에서 왔대요. 몇 살이냐고 묻기에 군제대 했다고 말했더니
부모님따라 놀러다니기에 고등학생인줄 알았대요"
"부모님 따라 온 게 아니고 모시고 왔다고 말씀드리지 그랬니"
"그러지 않아도 아버님 회갑기념으로 효도하러 왔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 맞어...호호호"
"요즘 보기드문 효자 청년이라구....
부모님께 아들 교육 잘 시켰다는 말 꼭 전하래요"
"................"




이제 며칠후면 여름휴가다. 올해는 내가 바오로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회갑이 넘은 나이 임에도 아직 현직에 봉직하고 있으니 어쩌면 마지막 휴가가 될
런지도 모르겠기에

"올해는 우리 둘만 동해안에 다녀옵시다"
"어쩐 일로 당신이.... 아이들은 어쩌고...."

작년에는 큰아들이 전공과는 다른 공부를 하느라고 짐 싸들고 집을 떠나 있었다.
삼복 더위에 선풍기하나 들고 골방에서 땀에 절어가며 공부에 여념이 없을
큰 녀석과 사업을 한다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밤샘작업을 하고 새벽녘에
들어오기 일수였던 작은 아들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어 바오로와 나는 어쩌면
편히 지냈다고도 할 수 있다.
집 떠나면 고생이니까.
이번엔 늙은 할방과 할망이 손잡고 또 예의 동해안을 더듬어 볼까 생각중이다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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