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무박 나들이

샘터 표주박 2002. 3. 15. 12:20






무박 나들이..


바닷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와 그 바람을 견디느라 등이 굽은
소나무가 외로운 곳. 무서리치는 어둠을 몰아내 줄 여명을 기다리
느라 눕지도 못하고 꾸부정히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

오래전 어느 드라마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꾸며낸 철길을 그리며
찾아온 길손을 반긴다. 밤잠도 잊은채 그 자리에 홀로 서서 세찬
바닷바람 마다않고 우리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나 보다.

그리고....
하얀 포말을 밀고와 내려놓고 부숴지는 파도가 있는 곳...
밤안개 헤치며 굽이 굽이 산허리 돌아들어 새벽녘에 찾아든 정동진.

어둠을 뚫고 밤새 달려온 사람의 행렬이 삽시간에 백사장을 메우고
시장터를 방불케 한다. 조용히 가을바다 낭만을 즐기려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갑짜기 저 외로운 소나무처럼 내 등줄기에도 한기가 내려 쓸쓸한
소나무라도 껴안고 체온을 높이고 싶어진다.
이윽고 어둔 동쪽 하늘에 빛이 서리는가 싶더니 태양은 좀처럼
조도높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어느 틈엔가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자리를 뜬다.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내 사는 동안 죄업이 많아 해돋이를 볼 수가 없단다
그런가 보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차에 올랐다
죄업이 많아 얼굴을 감추었다던 태양이 당당한 모습으로 차창밖에서
활짝 웃고 있다. 버스는 우리를 태우자마자 마구 흔들어대며
줄달음이다. 천천히 바퀴를 굴려도 좋으련만 무에 그리 빨리 가야만
하는지 아름다운 오색장관을 급히 뒤로 밀어낸다.

고흐가 이곳에도 왔었나 보다.
노랑물감을 흩었고 그 열정을 머금은 모든 수목들이 일시에 물감을
뿜으며 하늘을 향해 꿈틀대고 있다. 천경자도 뒤질세라 미인도 화관
벗겨다 나뭇가지에 씌우며 환하게 웃는다. 아니 이세상에서 붓을 든
모든 화가가 뛰어나와 전희예술 축제를 한바탕 펼친것만 같다

어디선가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긴 목을 내밀어 차창을
둘러봐도 물줄기는 보이지 않고 오색봉우리와 산허리뿐이다.
버스 엔징소리에 놀란 꿩이 푸드득 날개를 치며 기지개를 편다
세상 고달픔을 뒤로 밀어내려는 듯 버스는 숨가쁘게 돌아들어
파아란 하늘과 맞닿은 항아리의 행열 옆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고 한편의 영화 같기도 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돈연 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씨 부부.

카톨릭 신자로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대 음대를 졸업, 독일 국립
음악 대학원을 거쳐 독일 브람스 음악원 강사, 충남대, 전북대,
계원 예고등에 출강했다는 화제의 인물을 만나는 것이다

첼로의 선률과 토종 된장이 함께 발효된 그녀만의 삶의 향기는
과연 어떤 철학으로 응축되어 있을까?
눈으로 보고 코로 맡아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싶었다
그녀는 된장마을 방문객을 위하여 작은 음악회를 열어 고혼의 소리를
몸소 들려준다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테마 여행인가?

이들 부부의 멋진 삶을 보며 삶의 멋과 맛을 음미해 보고싶어서
철로위를 달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버스로 정선 오지마을을
찾은 것이다

"여기서 연주를 하면 자연과의 교감으로 연주가 잘되어요
힘든 노동을 하다보니 기교적인 것은 줄었지만 오히려 감성적인
것들은 훨씬 더 좋아졌어요. 내가 '한 오백년'을 연주하면 우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옛날에 내가 '한 오백년'을 연주했다면 관객이 울었겠어요?
그만큼 소리가 깊어진 겁니다.
소리는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어요. 내면의 소리거든요"

그렇다....내면의 소리...깊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웬지....
첼리스트의 말대로 연주가 깊어 졌을까.... 진솔한 고백일까?
첼리스트의 사랑과 삶과 음악이
된장 공장과.... 김치공장과...그리고 상술과.....
결합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차라리..상상으로만 그림을 그리고 첼로 연주를 들을 걸....!!




버스는 시간에 맞추고 우리는 버스에 맞춰 흔들댄다
정선 시내를 굽어보는 비봉산 중턱에 정선 아리랑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고, 여량리 아우라지강이 날카롭게 잘려나간 산허리 밑을
돌아든 맑은 속삭임처럼 먼 자리에 누워있었다
가이드는 급한 목소리로 설명하느라 바쁘다
두갈래로 흘러 내려오던 물길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아우라지'라 부른다고 일러준다
여랑리에 사는 처녀와 건너편의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서로 사랑을
했는데 처녀가 유천리로 건너간 어느 가을에 홍수가 나서....
그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 가락에 실어 불렀다고 한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 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

처녀가 부른 애달픈 사연이 무심한 강물과 함께 따라 흘렀다고
설명하지만 수량이 적어 바닥이 드러난 강가에는 배는 없고 앙상한
쇠줄만 차갑게 매어있어 애절한 곡조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두 물줄기 합수지점에는 아우라지 처녀상과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강을 벗어나 동쪽 계곡을 따라 오르면 몰운대(沒雲臺)를 만난단다.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비록 차창밖으로 굽이굽이 돌아든 태백
산맥의 등줄기지만....
골 깊은 산들이 겹겹 하늘을 품고 누워 오색 향유에 취한 듯
가을 환상을 흐드러지게 드리우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정선 아리랑의 애조 띤 가락을 어찌 지나칠
수 있으랴...
우람한 자태와 빼어난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아리디 아린
정선 아리랑의 구슬픈 가락이 이곳 사람들 혼속에 배어 있음을 생각해
보았다.

고려시대를 거슬러...

그 시절의 충절과,
폭정에의 시달림,
그리고 비통함,
인생살이의 무상함과 애환을
산세의 깊은 골 보다 더 깊은 마음골에
묻어둔 한의 가락이리...라....


정선의 구명은 무릉도원 아니냐
무릉도원은 어데 가고서 산만 총총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리랑 中 산수편』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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