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샘터 표주박 2002. 3. 13. 00:47






Ixelles의 전원시 (1876년, 브론즈, 파리 로댕 박물관 소장)

루소(J.J. Rousseau) 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한번은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또 한번은 인간으로 사회에 태어난다' 라고 말했다
사람의 첫 탄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던져진 존재로' 태어나고 두 번째는 생활하기 위해서 사회에 다시 한번
태어난다고 어느 유명한 철학자는 말했다

그 철학자의 말에 의하면 첫 번째 탄생은
어머니의 생명을 담보로한 '육체와 생명의 탄생' 이며, 두 번째 탄생은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복잡한 사회에 다시금 태어나는
'정신과 자아의 탄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떠한 탄생이든 심한 고통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사람 (1880년, 브론즈, 파리 로댕 박물관 소장)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삶의 본질에 대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고뇌하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와 생의 목적과 의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수없이 던졌고
때론, 정신적 갈등으로 방황의 밤거리를 배회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삶에 건강한 뿌리를 내리는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두 번째 탄생....

허공에 쏘아 올린 자신의 질문에 합당한 해석과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인생은 부조리이며 수수께끼요, 아폴리아(aporia)' 라고 규정짓기도 하며
제 1의 탄생인 존재의 차원에서 제 2의 차원인 생활의 차원으로 비상하기
위해 필연으로 찾아오는 가치관의 혼란을 거치면서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뜨고 참된 자기를 찾아 '나 다운 나' 를 형성하여
성숙한 사회인으로 발돋움한다.

이 시기는 인간을 동물의 집단에서 떠어내는 '푸른 사색의 때' 이며 이는
인생에서 필연으로 찾아오는 삶의 전환점을 찾는 아픔의 시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알에서 깨어나는 아픔과 허물을 벗는 고통을 체험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숙성되어져 자신의 자리를 찾게되는 것이다





Bellona (1878년, 테라코타, 파리 로댕 박물관 소장)

하지만 삶이란 간단치 않아서 하늘을 찌를것 같던 포부와 욕망도 사회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 장착되어진 겹겹의 덧에 걸려 허우적 거리다가 운 좋게
목표점에 도달하는 행운을 얻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덧에 걸려
꼬리와 다리가 잘리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엇갈린 삶의 길목에서 마지못해 고개를 떨구고 그 옛날 고뇌하며 저항하던
'부조리와 모순'에 적당히 길들여진 채 '나'를 잃은 얼굴로 씁씁히 타협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듯이 욕망이 크면 클수록 좌절과 절망과 허망의 골은
깊을 수밖에 없으며 인생이란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아님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냉엄한 경쟁 대열에서 낙오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날이 아니었던가?

어느듯 머리에는 서리가 내리고 관절 마디마디가 마모되어 삐걱거리는데...
거친 피부의 주름진 연륜만큼 축적된 갖가지 체험들은 자신의 마음자세와
언행을 체득하게 해 주었을 터인즉, 소망과, 의지와 달리 살아온 수많은
날들이 하늘 거울에 그대로 박혀 나를 내려다 보고있다

긴 터널의 어둠속에서 가느다란 빛의 존재를 향해
레일이 마모되도록 달려온 수명을 다한 철마는
이제 긴긴 휴식을 목전에 두고 있음에....

'나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과연 무엇을 위해 달렸던가?
내 삶에 영향을 준 사건들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나?
가장 소중히 여겼던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던가?
나는 언제까지나 영적인 어두움에 갇혀서 배회할 것인가?
내 삶의 흔적들과는 어느 세상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새로운 탄생을 위해
새로운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서 기다리는 처녀이고 싶다.

이름하여 "제 3의 탄생"을...

사랑의 옷을 입은 여인으로
새로이 태어나고 싶다...



우리가 제 아무리 오랜 세월을
무력감속에서 살아왔다 할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두운 방에 들어가
일단 불을 켜게되면
그 방이 하루나 일주일을,
아니면 일만년동안 어둠속에
파묻혀 있었을 지라도 문제 될것이 없다.

우리는 일단 불을 켰고,
그래서 방이 환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불은 켜진 것이다


-샤론 샬츠버그-





이브 (1881년, 브론즈, 필라델피아 로댕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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