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오늘이 마지막이듯

영화 '시'

샘터 표주박 2010. 5. 18. 13:15




 



 
"詩 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는데 함께 볼래요?"
남편의 의향을 넌즈시 떠 보았더니만 반응은 역시나...
"싫어!"
"오랜만에 마눌과 나이가 비슷한 연배의 옛날 배우 '윤정희'가 주연한 
영화를, 그것도 며칠있으면 마눌 생일인데 영화 한 편 함께 못 봐 주나!
깐느 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대되었다는데..."
"응.. 그렇구나...  당신 생일이구나... 그럼 내 함께 가 주지..."
이리하여... 황송하옵게도 선심쓰 듯, '생일 선물' 대신으로 흥쾌히 동행 해 
주겠 단다. 아버지와 엄마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들이 5/16일 일요일, 4시 
35분 입장권을 인터넷으로 예매해 주어 본인 주머니돈 한 푼 안들이고 생색을 
내게 되었다. 바보같은 마눌은 그것만으로도 흡족하여 콧노래라도 부르고픈 
심정으로 잽싸게 치장을 하고 상영 시간에 맞춰 영화관으로 향했다. 
                    .
                    .
여울에 부디치며 돌돌돌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물 위로 영화 제목 '시'가 
스크린에 뜬다. 강뚝 위 밭고랑에서 뛰어 놀거나 나물을 캐는 소년 소녀들이 
화면에 잡히고 강여울 저편에서는 여학생의 시신이 물에 엎드려진채로 떠 
내려가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클로즈업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미자(윤정희 분)는 나이에 비해 화사한 옷차림으로 조금은 산만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단어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며 자신의 
기억력에 대하여 자문을 구한다. 병원을 나서서도 여기 저기를 둘러보며 
의미없는 미소를 짓다가 어느슈퍼마켓에서 키를 받아 이층거실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김희라 분)을 목욕시켜주는 일을 하며 
일당을 받아 그날 그날 살아가는 처지다. 집에 돌아온 미자는 '철딱서니 없는 
손자' 에게 밥을 차려주며 이런 저런 두서 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주인공의 행동과 스토리 전개가 산만하고 느릿하다는 느낌이 든다...... 
                       .
여기까지가.....내 기억속의 영화 스토리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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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이 툭툭 건드린다. 엉겹결에 눈을 뜨니 어둠속에서 눈에 익은 첫장면이던 
얕은 여울이 몇초간 다시 흐르다가 멎는다. 비몽사몽간에도 영화가 끝났음을 
직감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몸을 가누고 주인공 미자보다 더 느릿한 걸음걸이로 
비틀대며 카펫이 깔린 계단을 더듬어 밟아야만 했다.
                      .
                      .
남편에게 내가 본 내용을 말했더니만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이사람, 처음부터 잤구만....."
내 평생에 이런 영화관람은 처음이다.
그러니까 첫 자막만 보고.... 깊은 잠에 빠진 셈...
주인공 미자처럼 나도 '의사'의 도움을 청해야 할까보다.....하하하...
아래글은 '시'를 놓친것이 못내 아쉬워 인테넷을 뒤져 보았다. 
먼 후일, 위성방송으로 방영되면 다시 봐야겠다. 
내 느낌은 어떤가를....ㅋㅋ
  
미자는 시 쓰는 법을 배우지만 시를 쓰지 못한다. 
"시란 사물을 진짜로 보는 것"이란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싱크대 설거지감도 
바라보고 냉장고 문짝도 쳐다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작은 수첩과 볼펜을 갖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메모를 한다. 
강사는 "열심히 관찰하다 보면 시상이 찾아온다"고 하고, 아마추어 시인은 
"시상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시는 배우면 쓸 수 
있는 것인가. 과연 시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직후 미자는 의사로부터 치매 진단을 받는다. 
그녀는 '전기'란 말이 생각나지 않아 '에너지'라고 말한다. 뇌 한쪽에서는 
명사·동사 순으로 단어들이 빠져나가는데, 다른 쪽에서는 시에 필요한 
단어들을 간절히 붙들어야 한다. 
그녀는 손자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을 가장 좋아하지만 코밑이 거뭇거뭇한 
손자는 몹쓸 짓을 하고 다녔다. 시 낭송회에서 안도현의 시를 읊은 남자는 
'가운뎃다리' 운운하며 음담패설을 쏟고, 낭송회 뒤풀이에 나타난 젊은 시인은 
술에 취해 "시는 죽어도 싸!"라고 소리지른다. 
갑자기 식당 마당에 나가 서럽게 우는 미자에게 음담패설남은 
"누님, 왜 우세요. 시가 안 써져서 우세요?" 하고 묻는다. 
미자는 삶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고, 꽃을 보고 쓰는 것이 
시가 아님을 알아버렸다. 
그 참담한 깨달음을 눈물로 흘린 뒤에야 그녀는 시 한 편을 쓰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는 이야기를 강렬하게 만들 만한 고비가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러나 감독은 일부러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모두 피해갔다. 
영화음악도 전혀 쓰지 않았다. 마치 그런 모든 영화적 장식은 앞으로도 절대 
쓰지 않을 것처럼.
팀 버튼을 비롯한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윤정희라는 배우를 이제야 발견한 
것을 스스로 책망할 것이다. 김용택·황병승 시인이 김용탁·황명승이란 이름으로 
출연하는데, 다른 감독들의 눈독을 받을 것 같다.
얕은 여울에서 물이 돌들에 부딪혀 자글자글 흘러가며 영화가 끝난다. 
시도 영화도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 끝내 깊고 푸른 호수에 다다른다. 
자막이 올라갈 때쯤엔 관객도 한층 사려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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