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오늘이 마지막이듯

누갈다 형님을 보내며

샘터 표주박 2010. 12. 4. 12:45


 

누갈다 형님 영전에 참 야속하외다! 어찌 그리 황망히 떠나가셨나요. 막달레나야~ 나~ 간다~ 이별 말씀도 없이 그토록 인자하시던 미소까지 감추시고 외롭고 쓸쓸한 그 먼길을 서둘러 홀로이 떠나셨나이까. 당신의 부음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 했나이다. 이십여년 넘는 긴긴 세월 아픈다리때문에 갇혀 지내면서도 새벽미사만 다니셨기에 그저 그리 지내시리라 여겼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내 불찰은 깨닫지도 못하고 왜들 이리 무정들 하시냐고 오히려 탄식을 했습니다. 그 분 말씀으로 맺어진 우리들, 그 분이 부르시면 거역할 자 뉘 있으리오마는 '마지막 인사'는 하고 따르겠다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애원 하시지 그리도 급하게 '아멘'으로 즉답하셨나이까. 한번쯤 거역 하실 수도 있었으련만 야속하고 야속하외다. 서설이 흩날리던 날, 흐르는 눈물 닦으며 '주님이 거하시는 공원에서 주님이 달아주신 천사 날개로 마음껏 훨~ 훨~ 날으시어 우릴 지켜 주시옵소서' 마지막 기도를 남깁니다. 2010/12/04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 루트가르다의 일생은 주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합일을 지향하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속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골로 3, 3-4)라는 이 성 바오로의 말씀은 루트가르다의 생애를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루트가르다는 1182년 벨기에 돈글에서 귀족의 자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대단히 신심이 깊은 분으로서 루트가르다를 경건하게 키우려고 노력햇으나, 아버지는 신심이 없는 세속적인 인간으로서 현세의 쾌락, 허영, 사교 등에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으므로 루르카르다는 이처럼 상반된 교육 방침의 희생이 되어 선을 행하는 것 보다 악을 따르는 편이 더 쉬운, 그야말로 의지가 굳지 못한 소녀로 자라났다. 그녀는 결혼한 나이에 이르면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어떤 귀족 청년과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결혼 지참금도 딸에게 줄 수 없을 정도로 상업에 실패하여 큰 손해를 보자, 처음부터 사람보다 금전을 탐내고 있던 청년은 즉시 약혼을 파기하고 루트가르다를 만나지 않았다. 그 당시의 루트가르다의 부끄러움은 어떠했으랴! 그녀는 그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어머니의 권고대로 이후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하느님께만 의탁하며 살아가려는 결심을 했다. 성소(聖召)의 유무(有無)를 알고자 일심으로 기도하고 있던 어느날 그녀는 뜻밖에 예수의 발현을 보았다. 즉 예수께서 유혈이 낭자한 옆구리의 상처를 보이시며 '보라, 그대가 사랑해야 할 것을! 이 상처에서야말로 그대는 무상의 기쁨을 발견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후 그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필로 삼고 그분의 성의에 합당한 것을 구하며 밤낮 덕을 닦을 결심을 더욱 굳게 했다. 18세 때 꿈에도 그리던 수도 서원을 발한 그녀는 오로지 사랑하는 주님께 봉사하기 위해 수녀의 본분인 기도, 노동, 고행 등에 골몰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도 그녀를 보다 높은 완덕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 아래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나 남에게 오해를 받는 등의 정신적 고통을 거의 끊임없이 내려 주셨다. 그녀는 이모든 시련을 기쁨으로 받아 그녀의 영혼은 하루하루 더 굳게 주님과 결합되었고, 예수께서도 그녀에게 발현하시어 신비적 생활의 오묘함을 명백히 밝혀 주셨다고 한다. 이러한 은혜는 온전히 자기를 끊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면 좀체 베풀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녀는 회칙에 정해진 책임 기도를 완수함은 물론, 틈만 있으면 기도와 묵상 등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가 구한 소원을 실제로 신기하게 채워졌다. 한 예를 들자면, 어느날 그녀가 잘 알고 지내던 한 수도원자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사람은 생전에 남에 대한 동정심이 모자랐었다. 그래서 루트가르다는 그이 사후의 운명을 근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고행을 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안되어 그가 40년이나 덜 받게 되었습니다. 하고 감사하며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녀가 특별히 죄인을 위해 진력한 한 가지 이유는 젊었을 때의 불미한 생활을 다시금 통회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느님과 깊은 신비적 합일의 은혜를 받게 된 루트가르다는 직접 예수께 지도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가 7년간의 단식재를 세 번이나 명 받은 것도 그 실례이다. 그 최초의 그 최초의 단식재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알비파 이단을 소멸하기 위해, 다음 것은 죄인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 것은 바햐프로 교회를 급습하려는 박해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함이었다. 루트가르다는 이와 같이 주님의 뜻대로 수도 생활에 골몰하고 다른 자매들의 훌륭한 모범이 되었으므로 그가 겨우 25세의 젊은이로서 수도원의 원장에 추천된 것은 별로 놀랄 것이 못된다. 그러나 겸손한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수도원에 간청하여 고향을 떠나 브라반드 주의 아비에르 수도원에 가서 약 40년 간 경건한 수도 생활을 계속 했다. 마지막 11년간은 주님의 특별한 섭리로 완전히 장님이 되었으나 그 부자유스러운 고통을 주님의 고난에 합쳐 성부께 바치며 세상의 구원에 동참했다. 이렇게 수많은 공적을 쌓으며 세상에서 주님과 일치하고 있던 루트가르다가 풍부한 보수를 얻으며 영원히 배필로서 즐길 수 있는 천국으로 가게 된 것은 1246년 6월 16일이었고, 그의 나이 64세 때였다.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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