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오늘이 마지막이듯

폐렴백신

샘터 표주박 2014. 3. 31. 16:54

 

 

 

 

 

 

엊그제 65세~70세 폐렴구균 예방접종 안내문이 배달되었다. 4월 21일 부터 5일간에 걸쳐 접종하라는 통지다.  안내문을 펼쳐본 순간,  '그럼 그렇지! 분명 접종 안했어. 아직 내 기억은 쓸만 하다니까!' 묘한 미소를 짓는다. 

 

지내고 보면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예서 백일 10여일 앞두고 큰 홍역을 치뤘다. 안산으로 이사한 친구집과 안양사는 친구집까지 두루 다녀온 다음 날, 미사참례 후에 레지오 단원들과 차를 마시는데 한 자매가

 

"형님, 아가다 할머니 기도하러 갑시다" 

"응?... 나?... 난.. 어제 말이야.... 아니...가까우니까 잠깐 가지 뭐..." 

 

멀미가 심해 조제한 멀미약을 복용하고도 못미더워 물약까지 2병을 더 마신터라 이틑날 까지 비몽사몽 헤맨다. 이토록 못난 사유를 단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구차하여 물먹은 솜같아도 따라나섰다. 마침 중환자실 면회시간이어서 문이 열리자 환자 가족들이 우르르 들어간다. 

 

"형님, 우리도 들어갈까요?"

 

레지오 단원들에게 중환자실 방문시에는 문앞에서 기도만하라고 늘 이르곤 했는데 단장의 이 말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그러자고 선답을 하고 말았다. 

슬리퍼를 갈아신는 이름표를 나눠주던 남자 간호사가 한명만 들어가란다.  까운을 입던 단장이 '형님이 들어가세요~' 한다. 또 아무 생각없이 단장이 입던 위생복을 받아 입었다. 남자간호사는 할머니 위치는 오른쪽 맨 끝이라고 일러준다. 병실 간호사에게도 할머니 이름을 대니까 '저쪽' 이라며 손으로 가리킨다. 조심조심 다가가 유리창 너머 환자 머리쪽에 크게 써붙인 이름을 확인하고 잠시 머뭇대다가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린다. 수많은 호수가 코로 입으로 가슴으로 기기로 연결되었다. 할머니는 눈을 뜬채 가쁜 숨을 몰아쉰다. '하느님 도와 주십시요' 속으로 뇌었다.

 

그때 유리창 너머에서 간호사가 큰 동작으로 나를 불러낸다. 간호사가 거긴 왜 들어갔냐고 마구 화를 낸다. '...아니, 언제는 맨 끝이라고 안내하고, 들어가라고 손짓까지 하더니...' 그럼에도 난 아무대꾸도 못하고 간호사의 호통과 강력한 지시로 손을 두세번 씻고 쫒기듯 뛰쳐나왔다. 정신이 번쩍든다. 비몽사몽이던 머리속 안개도 확 걷혔다.

 

"어쩌지...  할머니는 격리중인 폐렴환자야.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난 올겨울 내내 가래가 그렁거려 약을 달고 지냈고 대상포진을 수없이 겪을 정도로 면역이 바닥인데... 나 어떻하지?"

"형님, 하느님이 도와 주실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글세.. 거긴 왜 들어가냐고... 내 정신이 아니야..."

 

남자 간호사가 들여보냈다. 여자 간호사가 가라고 했다..라는 말은 핑게고 구실일 뿐이다. 엄연히 내 실수고 내 불찰인데 뉘를 탓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내 실수까지 하느님이 도와 주실거라는 확신도 없다... 난감 그 자체다.

집에 와서도 내 어리석음이 부끄러워 바오로에게는 내색도 못하고 거의 뜬 눈으로 날밤을 보냈다. 폐렴균 잠복기가 7일 ~14일 이라는데 다음 주일이 예서 백일... 이를 어쩌나...

 

다음 날, 미사 끝나자 마자 다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어제 격리중인 폐렴환자에 노출됐었습니다. 10초에서 15초 정도... 올 겨울 내내 기침약도 계속 복용중이고. 어떻게 하죠? 도와 주세요"

"폐렴 예방접종했나요?"

"아뇨"

"그럼 폐렴 예방접종하세요"

"감기기운있는데 괜찮을까요?"

"열도 없고.. 심하지 않으니 괜찮아요. 접촉했다고 다 폐렴에 걸리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약 처방도 해 주세요..."

 

15만원짜리 폐렴예방접종하고 처방해 주신 약을 복용면서 근신하며 며칠전까지 환자처럼 지냈다. 레지오 회합때 15만원짜리 백신접종한 사실을 꺼냈더니 나보다 한살 아래 부단장이

 

"형님! 작년 가을 청소년 수련관에서 노인들 폐렴백신 접종했잖아요!"

"난 안맞았어! 바오로는 맞은 거 같은데... 전혀 기억이 없어..."

"보건소에서 놔 주는 것도 평생 한번 맞는 겁니다. 형님도 분명 맞았어요."

"응? 그래? 그럼 난 15만원만 버렸네.................."

 

 

 

 

2014/03/31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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