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면 5~6분 거리에 푸른 숲, 우리의 정원이 있다 북쪽 등성이를 오르면 만해 한용운, 죽산 조봉암, 소파 방정환, 의학자 이자 국어 학자인 지석영, 독립운동가 오세창, 호암 문일평, 초대 대법 원장 김병로, 시인 박인환등...독립운동가, 애국선열, 저명 인사등이 잠든 곳. 묘소에는 연보비가 세워져 후손에게 역사 교육장으로도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망우리 고개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를 정하였을 즈음, 자신이 묻힐 명당을 돌아보고 이 고개에 이르러 그 터를 굽어 보며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겠노라'했다 하여 忘憂고개로 불리웠다 한다. 유택이 즐비한 이곳은 73년 부터는 매장이 금지 되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책로는, 운치있는 '사색의 길'로 거듭 태어나, 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받은 것 만큼 건강으로 환산하여 되돌려 주는 고마운 자연공원이 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어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등줄기를 만난다. 제법 가파른 바위 등을 밟고 깔딱고개에 올라서면 광나루, 미사리가 발아래에 말없이 누워있고, 팔당이 정지된 그림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눈을 들어 다시 방향을 바꾸면 금싸라기 땅 강남 일대가 옹기종기 아늑하고, 남산 타워도 서울 한가운데 중심답게 우뚝하다. 매연이 걷힌 맑은 날에는 저 멀리 서해안 인천까지도 파아란 시선을 매달고 달음질 친다. 뿐만 아니라 돌아서 두 팔을 벌리면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도 반갑게 손을 내민다. 그렇다. 생각해 보니 참 좋은 고장에 살고 있다. 이 외진 곳으로 숨어 들다 싶이 옮겨 앉은 지 이십여년, 물길 굽이친 자리에 되돌아와 다시 건너보는 징검다리가 이리도 고맙구나...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용마산에게 깊은 절이라도 해야 한다. 며칠전 친구와 용마산을 올랐다. 지천으로 널려져 있는 이름 모를 노란 꽃망울이 간간이 불어오는 솔바람에 고개를 헤적이며 반긴다. 아카시아 향내음이 스러지면 뒤이어 노랑꽃잎 8장을 활짝 펼쳐들고 용마산을 온통 샛노랗게 물들이지만, 그때 마다 나는 그저 막연히 '저 꽃 이름은 무얼까?' 하고 잠시 스쳐지나치었다. "노란 꽃이 참 예쁘기도 하네. 꽃송이도 제법 크고, 이름이 뭐지?" 나직한 친구의 물음에 묵묵부답일 수 밖에.... 모르니까... 이마에 맺힌 땀방울 만큼이나 일상에서 건져올린 삶의 이야기도 송골히 맺히고, 찌든 매연에 노출된 시름일랑은 발 아래 한강물에 헹구어 솔숲 바지랑대에 걸어 유월 햇살에 말린다. 인적드문 사잇길을 돌아든 외진 약수터에는 물을 받는 사람이 없다. 4~5m 아랫쪽에는 누군가 커다란 생수통을 심어 놓아 고인 물이 철철 넘친다. 절반쯤 깨진 플라스틱 바가지까지 띄워놓은 걸 보면, 땀에 절은 이마에 샘물 한바가지 뒤집어쓰라는 배려인 듯 싶다. 우리는 약속 이나 한듯 팔을 걷어 올리고 세수를 한다. 아~ 상쾌함이 폐부 깊숙히 파고든다. 하산길 발치에서 노란꽃들이 다시 일어나 '잘 가라' 손을 흔들어 인사 한다. 친구는 꽃을 꺽어 들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내 보인다 "이 꽃이름을 아십니까?" 하나같이 고개를 옆으로 도리질한다. 아마도 족히 15~6명에게 물었다. 혹시나 하여 초등 아이들에게까지 기웃거려 보았으나 역시나였다. 친구는 침통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꽃잎에 입을 대고 이야기를 한다. "참 예쁘다. 그런데 도대체 네 이름이 뭐니? 어느 나라에서 왔니. 나 말이야 이동네에서 그토록 오래 살았는데 오늘 너를 처음 만났어. 미안해....정말 이안해... 꽃잎 여덟장 하나 하나가 노란 색종이 오려 놓은 것 같아. 꽃받침도 특이 하구나. 턱이 하나가 더 있네. 하느님은 너에게 노란옷 곱게 입혀주시고 예쁜 얼굴도 주셨는데 나는 너를 처음 보았고 이름도 모르고 있구나... 미안해...정말 미안해..." 노란 꽃에게 미안한 건 그가 아니라 바로 '나'다 늘 먼 발치에서 마음속으로만 '저 노란꽃 참 예쁘다. 꽃 이름이 뭘까?' 생각만 하였지 친구처럼 쓰다듬어 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검색을 해 보면 담박에 알아낼 수 있으련만 그저 막연하게 예쁘다는 생각만 하였을 뿐 지금도 '고백'은 커녕 그냥 묵묵히 걷고 있지 않은가. 이름 모를 들꽃에게 '미안해..정말 미안해...' 연발하는 저 친구는 참된 사랑은 '관심' 임을 드러내 보이며, 작은 풀꽃 하나에도 저토록 사랑을 전하는데, 나는 어디에다 삶의 의의를 부여하며 사는 걸까. '나의 메마른 정서'를 짚어본다. 작은 것에 대한 마음 열림은 사랑의 출발이고, 작은 것에 대한 감사는 사랑의 결실이며, 노란 잎새에 떨군 친구의 향기는 절대자의 옷을 입은 사랑의 체취이다. 메마른 삶의 언저리에 피어난, 보잘것 없을 지도 모를 나의 볼품 없는 노란꽃... 나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사는 걸까 내가 잃어버린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작은 감동을 안겨준 '엄숙한 노란 삽화 하나' 가슴에 담는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검색창을 열고 자판을 두드린다. 6월에 피는 노란꽃....금계국...국화과...
2002/07/16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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