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겸손의 땅, 용서의 땅

샘터 표주박 2003. 4. 28. 14:38
 





흙은 생명의 어머니 / 조병화


향기로운 흙에서
향기로운 생명이 나올는지
향기롭지 않은 흙에서
향기롭지 않은 생명이 나올는지
혹은 그 반대일는지는 모르나
흙은 온 생명의 어머니

물은 순환하면서
생명이 순환하면서
해와 달이 순환하면서
지구는 생명을 품고 면면이 떠도는데

지금 이 지구는 흙이 흙을 잃어 가면서
생명은 그 생명을 잃어 가고 있나니
오, 이 슬픔, 어찌 나 혼자만일 것이랴
흙은 온 생명의 어머니인 것을.





겸손의 땅, 용서의 땅


겸손은 Humility 이고,
Humility의 어원은 Humus(땅)라는 라틴어라고 한다.

어원이 말하듯 참다운 겸손이란,
말하자면 성서의 말씀대로 창조주가 흙으로 빚어 혼을 불어넣은
"첫사람(adam)과 겸손(humus)" 은 같은 의미인 셈이다.
라틴어에서도 "겸손(humility)과 인간(humanity)" 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때
"인간이 가장 인간 다울 때" 그건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바로
"겸손할 때" 임을 알수 있다.

우리는 이 겸손의 땅을 이루 헤아릴수 없을 만큼 오염시키고 있다.
하지만 땅은 겸손되이 이 세상 온갖 더러운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 들이고 수용하며 정화시켜 생명의 근원인 자양분을 재생성하여,
생물이 종족을 번식하고 살아 갈수 있도록, 인간의 모든 잘못을 다
품고 용서하는 모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아니라 생물의 시신까지도 다 받아들이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케 하는, 그러기에 흙은 모든 생명의 원천(源泉)으로
흙에서 나와, 흙에서 살고, 그 흙에서 나오는 것으로써 생존함은 물론,
미물조차도 품어 주는 인자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으곳으로 흐르고 흙은 사계절을 안고 흐른다
물이 생물의 생육을 지켜주는 생명수라면, 땅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사계절의 순환을 지켜내는, "삶의 계절" 을 다스리는 침묵의 땅이다.

봄엔 연둣빛 싹을 내밀고, 여름엔 진초록으로 속살을 살찌우며,
가을엔 열매와 보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내일을 준비를 하고,
혹한과 폭설을 참고 견디며 裸身으로 새 순을 키우는 교훈을 가친다.
생명을 지니고 움직이는 모든 것의 삶을 다스리는 흙...

어렸을 적, 양지 바른 장독대나 댓돌위에 뒤안에 버려진 사기그릇이나
쭈구러진 양은 양재기를 늘어놓고, 고운 흙과 모래, 푸릇한 풀로 밥도
짓고 국도 끓여 나누어 먹으며 훗날 아빠되고 엄마되기를 고대 했었지.

넓디넓은 학교운동장 한 귀퉁이에 꼬챙이나 못으로 선을 그어놓고 엄지
와 검지로 엽전을 밀어내며 "내 땅, 네 땅" 나누었지.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깨진 기왓장으로 만든 공기돌을
하늘 향해 던지며 맨손으로 수없이 긁어대던 땅,
출렁거리는 고무줄을 맨발로 펄쩍 뛰어오르다 거꾸로 머리를 처박던 땅.
가을 운동회 날, 단거리나 장거리 이어 달리기 할 때 낡아서 헐거워진
신발이 거추장스러워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 맨발로 뛰었지...
그때 흙은 내 신체의 일부였다.

원래 우리 인간의 본성은 흙냄새가 살거워 흙을 떠나지 못하는 농부가
그러하듯, 우리들도 농부처럼 티 한점 없이 소박하였고.
욕심도, 거짓도 없었다. 깨진 사기그릇에 흙밥을 받아먹으며 성장한
흙은 우리 모두 에게 그런 심성을 허락한 것이다.


삶의 계절을 따라 퇴적층을 이룬 내 조그마한 텃밭.
따사로운 햇볕과, 기름진 토양과, 맑은 물이 허락된 아름다운 이 텃밭,
소망의 이름으로 거름을 주고, 행복의 샘에서 맑은 물을 퍼 올려
연약한 싹을 키웠을 내 유년의 소중한 기억들...

"나는 과연 어떤 꽃을 피웠을까..."

겸손의 꽃을 피웠을까?
사랑의 꽃을 피웠을까?
용서의 꽃을 피웠을까?

아니면...
모든 것을 뱉아버리고 흘려버리는 차거운 시멘트의 속성을 닮은
메마른 꽃을 피운건 아닐런지....
뻣뻣하다 못해 툭툭 부러지는 교만의 꽃은 아닐런지...

지금 이 시간 내가 피워내고, 피워냈을 꽃을 뒤돌아 본다






흙으로의 귀화 / 조병화

이제 머지않아 나는 죽어서
내 고향 난실리 흙으로 귀화하려니
귀화하기 전에 내 몸을 깨끗이 해 두어야 하리
돈이나 명성이나, 하는 세속의 때를 닦아 버리고
청초한 작은 이름 하나로

흙으로 귀화하는 것이로다
모든 생명들이 흙으로 귀화하듯이

죽음은 이렇게 흙으로 귀화하는
긴 여로의 한계선,
긴 여로의 이 한계선을 넘어서
육체는 흙으로 귀화하면서 생명은 다시 공기로 되려니

지금 나는 이 공기를 마시며
아직은 네 앞에서 이렇게
사랑이다, 꿈이다, 그리움이다, 하며
삶을 살기 위해서 삶이 시키는 대로하고 있지만

이제 머지않아 나는 죽어서
내 고향 난실리로 돌아가 그 흙으로 귀화하려니
사랑이다, 꿈이다, 그리움이다, 한
내 삶을 부끄러워하리

그 외로움도
그 쓸쓸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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