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맛비 속에서도 그는
한줄기로 치닫는 높다란 이상으로
오직 하나의 소망만을 가슴에 품고
해만을 바라보며 쑥쑥 키를 키웁니다
아무리 까치발 딛고 발돋움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지를 못합니다
어느 여름 날, 먹구름이 일더니
굵은 빗줄기가 후두둑댑니다
동그란 눈의 소녀가 허겁지겁 달려와
"큰 손 하나 주렴"
그는 소녀에게 굵다란 팔뚝을 내밉니다
소녀는 머리에 이고 빗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는 소녀의 뒷모습을 멀그러미 바라보다가
하나 더 주지 못한 게 걸려 고개를 숙입니다
어제밤에도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벌도, 나비도, 고추 잠자리도, 소녀도
모두들 무서워서 꼭꼭 숨었나봅니다
어둠이 정말 무섭다는 걸 알았습니다
칠흑 속에서도 거친 태풍속에서도
억센 뿌리로 땅을 짚고 살아남아
해님을 향한 하늘 길을 만듭니다
노란 분칠로 까만 죽은깨 키우는 것이
운명이라는 걸 그는 알지를 못합니다
아침 햇살이 찾아와 온 몸을 간지릅니다
벌나비가 얼굴에 침을 꽂아도 즐겁습니다
커다란 얼굴이 그들의 전용 놀이터입니다
'붕붕 소롯소롯' 이웃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할멈 등짝에서 칭얼대던 울보 아가도
그의 눈웃음과 마주치면 덩달아 해죽댑니다
고사리 손으로 덜익은 눈꺼풀을 헤집어도
'나는 야, 커다란 얼굴 내미는 싱검둥이'
"이거 줘"
아가도 그의 얼굴이 탐나나 봅니다
억센 할멈 손아귀에 목이 비틀리고
검정 눈물 몇방울 주루루 쏟아집니다
슬퍼 할 줄도 아파 할 줄도 모릅니다
빈 자리에 떨어진 눈물점 하나로
내년엔 꿈을 이룰수 있다는 생각뿐입니다
긴 목으로 커다란 얼굴로
좋은님만을 바라기 하는 꿈을........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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