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가 입동(立冬)이었으니 이제 겨울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스산한 바람이 가로수를 흔들고 은행나무는 금빛 낙엽 비를 우수수 쏟아냅니다. 보도 위에 흩어진 노오란 낙엽을 밟으며 계절의 정취 속으로 빨려 듭니다. 머지않아 떨기를 마칠 나무들은 나목으로 겨울의 긴긴 밤을 견디어 낸 연후에야 비로소 연둣빛 새 순과 화사한 꽃망울도 터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네 삶도 고난과 인고의 계절을 거쳐야만 진정한 행복의 참값을 맛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은행잎과 단풍잎이 고엽 되어 뒹구는, 만추의 서정이 물씬 묻어나는 11월의 거리를 걷노라면 나 또한 한 잎 낙엽이 되어 사념의 뜰을 배회합니다. 정말로 삶이, 지독히 허망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뭔가 내 의지와 다르게 굴러간다는 생각에 머물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대화가 단절되어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바바리 깃을 세우고 낙엽이 누워있는 거리를 걸어보리라-- 그리고 눈을 들어 맨몸으로 겨울을 받아들이는 나목의 혈관을 바라보리라-- 봄에 깨어날 눈을 마련해 둔 떨기에서 '죽으면 살리라'는 진리를 찾아보리라-- 집을 나서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상이 시작됩니다. 때로는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을 일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소싯적 은혜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가 최고인 양 매사에 가르치려드는 꼴불견도 목격하게 됩니다. 매사에 손익계산 부터 따지는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또는 남을 속이거나 중상묘락을 일삼는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도 그에 못지 않게 우스꽝스러울 겁니다. 거부감 없는 재치로 따뜻한 인연의 끈을 이어내는 슬기는 보다 성숙된 대인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선의 본질은 아름답고 악의 본질은 추하다는 것을 그들도 확연히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선악에 대한 깨우침의 부족일 거라 생각해 봅니다. 알고 있다는 것과 깨우침과의 차이일 겁니다. 깨우침은 행동이 수반되어야만 생명을 얻습니다. 그들과 나는 다른 존재일 수 없듯이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서 내 모순의 현주소를 바라봅니다. 혹여, 흥분하거나 기피하거나 적대시한다면 내안의 벽에 나를 가두는 것이 되겠지요.... '내가 죽는 길'은 참으로 힘들고도 먼 길입니다.... -표주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