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因緣에 대한 素描

샘터 표주박 2003. 12. 18. 11:53




스물 여섯 살이던 늦가을 어느 날, 어머니는 웬 청년의 얼굴을 불쑥 내밀며 숱한 이야기를 쏟아 놓으신다. 이미 사진첩 속의 내 얼굴도 증발하였고 그 날 이후, 교회 권사님 답지 않게 '찰떡궁합'이라는 한마디를 낚으러 발 품을 팔고 다니셨다.

'궁합은 선조들의 현명한 삶의 지혜'라느니, '동양 철학'운운하며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 올리시며 '궁합예찬'논자로 변신하였다. 권사라는 교회 직분은 속주머니에 감추고 하나뿐인 딸의 앞날을 위한 극성은 매일 다른 옷을 입었고 나의 볼멘 투정쯤은 묵살되기 일쑤였다. 침묵하시는 그 분께 바치는 기도만으로는 양에 차지 않으신 게 분명했다.

바오로와는 사진이 전달된 후에도 장장 6개월이나 뜸을 들이다 맞선을 보았고, 4개월 후 약혼, 2개월 후 결혼했다. 삶의 험난한 벼랑길에서 떨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동반자로, 그럭저럭 오늘까지 해로하고 있으니 궁합까지 기도로 받아들인 절대자의 관대하심이지 싶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다. 결혼은 반쪽을 찾기 위한 투쟁이다.
결혼은 절반의 성공이고 절반의 실패다. 라고 혹자들은 말한다.

결혼! 검증도 받을 수 없는 길을 걸어 와 다음세대에게 배턴을 넘겨주어야 할 막중한 임무수행이다. 그러기에 절대자께서 미리 예비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찰떡궁합'이라는 확인까지 받으려 하나보다.

옛 성현들은 결혼에 대한 불확실성을, 두 사람의 사주팔자(四柱八字)와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서로간의 상생(相生), 상극(相剋), 합(合)과 원진(元嗔)관계로 미리 풀어내었다. 하지만, 첨단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도 역술인을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열어 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하니 시대를 역행하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옷깃만 스처도 인연이다'는 불가의 가르침은 전생에 어떠한 관계를 맺은 것이고,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연관성을 이루며 톱니바퀴처럼 물리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궁합은 부부에게만이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와 잘 맞는 선후배, 또는 직장 동료, 형제 자매 등...심지어 부모와 자녀지간에도 정이 남다르고 이해의 폭이 넓은 관계를 "궁합이 잘 맞는다" 라고 말한다.

나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화장법이라든지 헤어스타일도 따지고 보면 내게 어울리는 궁합지수일 것이다. 또는 내가 소지한 소품 중에서도 유난히 애착이 가는 것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 또한 궁합이 맞는 감성지수 일치일 게다.

누구나 알고있기에 상식이랄것도 없지만 돼지고기와 새우젓은 '찰떡궁합'이다. 닭과 인삼처럼 한약재와 함께 먹으면 상승 작용을 돕는 '절묘한 궁합'도 많다. 피부를 매끄럽게 해 주는 율무, 기미에 효험이 있는 레몬, 땅콩은 노인의 노화된 피부는 물론이고 기력까지 회생시킨다니 이 역시 피부와의 기막힌 궁합이 아닐까. 관심깊게 살펴보면 값싼 불로초가 지천인 셈이다.

그러나 사람이나 식품이나 서로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피해야 한다. 토마토와 설탕, 무와 오이, 게와 꿀은 서로 만나지 말아야 한다. 인연이 아니니까.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듯 자신에게 맞는 음식이 따로 있다. 궁합이 맞는 식품을 體싸이클에 맞춘다면 과체중이나 저체중은 물론 질병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가. 자연식품이니 건강식품이니 유기농이니, 검증되지 않은 식품들이 판을 치고 이젠 유전자 조작 수입농산물까지 식탁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우리 땅'에서 재배된 농산물이나마 제대로 먹을 수 있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모든 우주 만물이 창조된 순간부터 서로 밀고 당기고 순환하며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하늘과 땅, 양지와 음지, 산과 강, 물과 불, 動과 靜... 등..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며 대자연의 거대한 섭리를 통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또는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자의 섭리 안에서 허락된 것이다. 나와 면목동의 관계도 이를테면 '찰떡궁합'이지.........싶다.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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