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프로패셔날 매너

샘터 표주박 2007. 4. 21. 02:21




 
얼마전 부터 건망증이 심해지면서 외출을 하려면 소지품을 두번 세번 확인하는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특별한 약속이라도 있으면 전날 부터 생각나는 대로 챙기고 
또 챙기고 그러고도 모자라 집을 나서기전에 가스밸브? 지갑? 열쇠? 폰, 심지어 
빗과 손수건에 휴지에 이르기까지 두번 세번 확인점검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내가 나를 못 믿는다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남편과 외출하였다가 귀가길에 집에서 가까운 열쇠점에서 열쇠를
복사하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점포 문이 닫혀 있었다. 열쇠 2개로 가방이 바뀔때마다 
찾아넣느라 애를 쓰느니 차라리 3개쯤 더 깍아 핸드백마다 넣어 두면.. 하는...
열쇠만이라도 챙기고 또 챙기는 수고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 신경을 끄고 싶어서..
"건너편 시장입구에도 열쇠점이 있어요."
"급한게 아니니까 다음주에 복사 합시다..."
다음날, 남편은 근무지로 내려갔고 화요일, 퇴근 길에 집에서 가까운 **병원옆
닫혔던 열쇠점이 문을 열었기에 가게에 들어섰다.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듬직한 
아저씨는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컴에서 눈을 떼질 못한다. 모니터엔 화투장이 어른
거리고 손님을 세워놓고도 눈은 화면에 손은 마우스에서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3개복사하신다구요?"
멋적게 씩 웃고는 찍 찍~ 금속성 소리가 울리고 열쇠 3개를 내 앞에 놓는다.
"아저씨, 지난번에도 여기서 새긴 열쇠가 맞지 않아서 다시 새겼는데 이번에도 
맞지 않으면 다시 올겁니다. 몇시까지 계실거죠?"
"네 그렇게 하세요. 9시까지 있을겁니다"
집에와서 손잡이에 열쇠를 끼웠더니 열리지도 잠기지도 않는다. 
혹시나 가게문을 닫을까봐 급히 내려갔고, 아저씨는 변함없이 모니터에 
시선 집중이다. 이번에도 컴을 주시하다가 깎았고... 두번째도 맞지 않았다. 
또 내려갔다. 아저씨는 변함없이 고스톱 삼매경에 빠져있다. 역시 성의 없이 
쓱쓱 깍아주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엔 틀림없이 맞을 겁니다. 기름이 말랐으니 윤활유를 뿌리세요" 
"네 그렇게 하지요.. 이번에도 맞지 않으면 내일 저녁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들리겠습니다"
그러나 세번째도 역시 열리지도 잠기지도 않았다... 
'고스톱에 빠져설랑... 생업을 이지경으로 하다니.. 손님을 뭘로 보나...'
2천원짜리 열쇠를 깍는 작은 점포이지만 '프로패셔날 매너'가 아쉽다. 은근히 화도 
나고 약도 오르고 울화통도 치민다...
다음날, 한정류장 앞서 내려 대형 약국에서 약을 사고 열쇠점도 살폈으나 약국 
주변에는 열쇠점이 없다. 할 수 없이 한정류장을 걸어 면목역까지 왔다. 
이번엔 길건너에 있는 가판대 열쇠점으로 갔다.
"열쇠 3개 복사해 주세요"
꽁지머리를 한 듬직한 청년이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으나 뭔가에 열중이다. 
혹 컴에?......ㅋㅋ
한참 후에 내 열쇠를 받아 여기저기 맞춰가며 기계에 넣더니 3개를 건네준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만원을 건네며
"어제 건너편에서 3개를 복사했는데 맞지 않아서 또 깍는겁니다. 혹시라도 맞지 
않으면 다시 오겠습니다"
"염려마세요. 잘 맞을 겁니다."
거스름돈을 받고 시장통으로 들어서려다 받은 돈을 세어보니 천원이 더 왔다. 
다시 뛰어가
"아저씨, 천원이 더 왔습니다"
"아.. 네.. 제가 손님을 기다리게 해서 깍아 드린겁니다"
집에 오자마자 새로 만든 열쇠를 열쇠구멍에 끼웠으나 돌아가지도 않을 뿐더러 
열쇠가 빠지지도 않는다.. 어쩌랴.. 차라리 내게 있던 키로 문을 열고 시도 했으면 
시장에서 사온 찬거리라도 집안으로 디밀었을 텐데.. 현관앞에 주섬주섬 내려놓고 
열쇠점으로 다시 뛰었다.
"열쇠가 돌아가지도 빠지지도 않아요. 어쩌지요?"
꽁지머리의 중후한 청년은 소아마비 장애인이어서 움직일 수가 없기에 내가 더 
걱정이 되었다.  
"사람이 나가야 됩니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놓고 가십시요. 동생이 지금 출장
나갔다 올 시간이 되었으니 곧바로 보내겠습니다.
"네.. 그러면 이곳 전화번호도 주십시요"
그러자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헬멧을 쓴 청년이 우리집 주소를 보더니 끄덕인다.
"아주머니, 빨리 댁으로 가십시요. 제가 먼저 갈지도 모릅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100M 달리기하듯 횡단보도를 건너 헐떡거리며 집으로 내달렸고, 
덕분에 오토바이보다 한발 앞서 집에 왔다.. 별짓을 다해도 빠지지 않던 열쇠가 
기술자 손이 닿으니 스르르 잘도 빠진다. 20여분동안 기술자의 수작업 과정을 거쳐
철컥 철컥.. 잘도 열리고 잘도 잠긴다. 
"어저씨가 진짜 기술자시네요. 실은 어제 **병원옆에서 열쇠를 깍았는데 맞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세번째 깍은 열쇠 3개를 내보였다.
"환불을 받으셔야지요"
"세번이나 깍아댔으니 재료값만도 꽤 나갔을겁니다."
"제가 증인이 되어드릴테니 지금 저와 같이 갑시다"
"아이고... 그사람도 먹고 살아야지요. 몇푼 되지도 않는데.."
"아줌마만 같으면 장사 할만하네요"
"화가나서 전자식으로 바꿀까도 생각했었습니다. 명함이나 한장 주세요. 
바꾸게 되면 연락드릴께요"
07/04/21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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