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행복한 바둑이

샘터 표주박 2007. 6. 10. 14:33


 

지난 일요일, 바쁜 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폰이 울린다
"지금 나 좀 봅시다"
"무슨일이 있으신가요?"
"양평에 다녀왔는데 만나서 이야기 합시다"
늘 다정다감하시던 데레사 할머님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하던일을 멈추고 약속한 장소로 가면서 '어디 편찮으신가? 아님, 자부님과 마음 
고생이라도? 양평으로 거처를 옮기시려고?' 이런 저런 여러 생각들이 스친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걸으시는 할머니가 먼저 와 계셨다. 몹시 초췌한 안색이 마음
고생이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할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마음이 아파서요. 좀 도와 주구려.."
"........."
할머니의 말씀을 요약해 보면,
매일 성당을 오고가는 길에 잠깐씩 쉬어가는 가게 앞에서 유난히 할머니를 따르는 
바둑이가 있었단다.  생김도 예쁘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을 볼 줄 아는게' 기특하여 
때때로 햄이며 순대며 족발을 가방에 담아 와 먹여주곤 하였는데 알고보니 주인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으나 강아지는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 동네를 배회하고 있는
이른바 주인 잃은 개였다고..
할머니는 잠잘 곳도 없는 바둑이가 불쌍하여 거처를 마련해 주려고 여기 저기 알아 
봤으나 마땅치 않아 애완견 쎈타에서 목욕시키고 예쁘게 치장을 하여 당신집으로 
데려 갔단다. 며느님은 폰으로 남편을 불러드렸고 황급히 달려 온 아드님은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로 '30년 동안 개 시중 들었으니 이젠 더 이상 개 치닥거리 
못하겠다'고 할머니 마음에 모진 상처를 주었단다.
80평생 처음 아들로부터 격한 표현을 들은 할머니는 서운한 마음에 강아지를 안고 
아들집을 나와 택시로 양평 친척집으로 갔으나 그곳도 85세되신 친척분이 노환으로 
몸져 누워 서울사는 며느리가 잠시 다녀가는 형편이라 개집과 족발과 사료까지 싣고 
간 강아지를 마당 한귀퉁이에 내려놓고 왔노라며 눈물을 흘리신다.
그 후로 본당 몇몇 교우들에게 '개를 길러주면 사례하겠노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허사 였다. 할머니는 애간장을 태우며 '바둑이를 받아 줄 은인'이 나타나기를 기도
드렸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목요일, 야고보 집에서 할머니가 박안나 지매와 
마주하고 계신다.
"이 분이 제 은인입니다. 바둑이를 길러 주시겠대요"
"그렇네요. 참으로 고마운 은인이시네요"
박안나 자매는 '은인' 이라는 말에 멋적어 하며   
"은인이라니요. 당치 않으십니다. 두마리를 키우다 한마리가 세상을 떠서 허전하던 
차에 바둑이를 선듯 키우겠다고 했어요."
바둑이에 대한 이런 저런 사연을 전해 들은 박안나 자매는
"아... 그 바둑인가 보다! 
머리에 하얀 줄무늬가 있지요? 저쪽 골목 달걀집 앞에서 저도 몇번 고기를 주었어요.
데레사 할머니는 바둑이 거처를 마련해 주지 못하고 당신이 병나면 어쩌나 싶었다고...
마지막 소원이 해결 되었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신다.........^^
07/06/10
-표주박

'표주박의 散文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난다..^^ 그날,  (0) 2007.07.30
냉면 배달입니다  (0) 2007.06.29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0) 2007.05.20
프로패셔날 매너  (0) 2007.04.21
아버지를 팝니다  (0) 2007.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