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영수증 주세요.

샘터 표주박 2009. 8. 24. 14:25
무더위가 한창인 며칠 전.. 아침에 밥을 짓는데 압력밥솥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다르게 느껴진다. 조만간에 선밥이 될 조짐을 알리는 신호다. 밥솥을 구입한지도 어연.. 이십여년을 훨씬 넘겼다 싶으니 무쇠라도 고장이 날만 하다. 김이 빠진 선밥을 거듭 뜸을 들이면 시커멓게 타버린 밑바닥을 닦아내기가 귀찮다. 그렇잖아도 어깨가 시원찮아 늘 신경 쓰이는데 또 혹사하겠다는 걱정부터 앞선다. 미리 대비를 해야겠다 싶어 무더위에도 바오로와 함께 남대문 시장 수입상가를 찾았다. 바오로가 교통사고 나기전이니까 2년여가 지났나 보다. 구역에 배정된 성전, 그 너른 바닥을 마포 두개를 포개어 닦아낸 대가로 어깨 인대가 손상을 입어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허리 디스크, 무릎 관절, 게다가 이미 오십견으로 수년 고생하였던 터라 몸을 아껴야 하는데... 교회일이라는게 늘상 하는 사람만 하게 마련이지 않은가. 요즘 젊은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다 바쁘다. 생업에 종사하기도 하고, 윤택한 삶의 유지를 위해 여가시간을 알토랑같이 쪼개며 살지 않은가. 누구를 탓할수만은 없다. 미련하게 몸을 사리지 않고 마포를 두개씩 포개어 구석구석 닦아낸 내 잘못이다. 압력밥솥 뚜껑을 커다란 가방에 넣고 어깨에 울러매고 바오로와 데이트 삼아..하하.. 눈요기도 할 겸, 남대문시장에 있는 숭례문 수입상가로 갔다. 바킹은 얼마전에 새것으로 갈아 20여년 사용한 낡은 뚜껑이 제법 깨끗해 보인다. 몇 번 다녀간 가게 앞에 멈춰섰다. 아저씨가 손님과 흥정중이다. 한참 기다렸다가 "김빠지는 소리가 이상해져서 왔는데요.. 좀 봐주세요" "오래되었군요. 부품 교환만으로는 안되겠고 손잡이를 몽땅 교체해야 겠어요" "네.. 구입한지 20년 훨씬 넘었습니다. 수명이 다 됐어요" "이 솥은 손잡이만 교체하면 대를 물릴 수 있어요" "얼마죠?" "7만 8천원인데요. 요기 작은 것 까지 갈아 드리고.. 8만원만 내세요" "뭐가 그리 비쌉니까" "아주머니. 5천원짜리를 그냥 끼워 드리는 겁니다. 이거 백화점에서 사려면 70만원이 넘는 겁니다. 8만원 들여서 손잡이만 갈면 새것과 똑 같아요. 손잡이가 밥솥 생명입니다. 모든 기능이 다 들어있어요" 2~3만원 정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비싸다. 바오로의 눈도 휘둥그래졌다. 그렇다고 갈지 않으면 이 밥솥은 무용지물되는 거다.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한마디 했다. "네. 교환해 주세요. 그런데요 부속품도 Made in Germany 맞나요?" "그럼요. 한 회사 제품입니다. 퍼펙트는 하나 뿐입니다." 내 말을 받아 그의 아내가 불쾌하다는 듯.. 화를 벌컥내면서 언성을 높인다. 바보같은 질문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내 딴엔 '그렇다'는 대답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백화점은 공신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시장 수입상가에서 파는 부품은 저렴한 만큼 다국적에서 생산된 부품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서... 한마디 건네 보았는데... 에그.. 본전도 못건지는 말을 왜 했을꼬...^^ "만약... 교환 후 기능에 이상이 있으면 다시 교환해 주실거죠?" "네.. 얼마든지 갖고 오세요. 만약 이상이 있으면 밥솥 전체를 갖고 오세요" "영수증 주셔야 해요. 여기 상가에서 그릇을 샀는데 교환하려니까 영수증을 요구하더라구요" "우리 가게는 그런적 없는데요" 할수 없이 '코렐' 파는 옆가게를 가르키며 "저 가게에서 코닝 컵을 사고 며칠지나 손잡이가 떨어졌어요. 교환하러 왔더니 주지도 않은 영수증을 요구하기에 바꾸지 못했습니다. 그때 영수증의 또다른 기능을 경험했습니다." "아.. 저기는 깨지는 그릇이니까 영수증 없이는 못 바꿔주지요. 알겠습니다. 영수증 써 드릴께요"

09/08/24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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