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애껴야 한대요

샘터 표주박 2009. 9. 6. 08:03
어느듯 하늘이 한층 높아지고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해 졌다. 계절에 민감한 여인들은 어느결에 하나 둘 긴팔 옷을 입으며 가을을 반긴다. 평일 10시 미사가 끝나고 '야고버 집'에서 차 한잔 나누는 일이 일상이 된지도 오래다. 약속도 없이 눈에 들어오는 사람과 마주앉아 10분~20분, 꿀맛같은 친교의 시간이다. 너와 나의 가림막 없는 훈훈한 일상을 넘나들며 또하나의 '감사'를 배우고 함께 나누는 '2배의 행복'을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판기 앞에서 서로 지갑을 열어보이며 내가 낸다커니... 실랑이가 벌어지고... 드디어 종이컵이 각자의 자리로 배달되고.. 서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앉자 담소를 나눈다. A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내일은 새벽미사 참례하고 딸집에 가야 해" 내일은 종이컵 대화에 첨석할 수 없음을 알린다. 아쉬웠던지 옆에 있던 B가 한마디 끼어든다. "왜? 일 해 주러?" "아니야.. 이젠 손주가 다 커서 챙겨주고 거들것도 없어. 지가 다 해. 딸도 에미 몸이 부실하니까 부탁하지도 않고." A는 레지오 단장이다. 며칠전까지 강남의 아파트 '청소 아줌니'로 출근을 하다가 어깨가 아파 그만두었다. 1년 남짓 다녔으나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송별회까지 해 주었다고 한다. 딸은 방송작가다. 어려서부터 내내 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도 못시켰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청년을 데려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여 승락을 했단다. 데리고 온 사윗감이 반듯해 보여 별 망설임 없이 결혼을... 첫아이를 출산하고, 사위의 외조로 대학공부도 마치고, 꿈이었던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모방송국 성인 드라마 시간대에도, 어린이 프로에도, 딸 이름석자가 tv에 뜬다고 넌즈시 귀띰도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더 강력하여 드라마 제목과 시간을 기억못하는 나는 치매 전조증이 아닐까 의구심까지 드는 할망임에 틀림없어 A에게 미안함이 없지 않다. 우린, 갑장 갑장하면서도... 행복차를 나누는 사이이면서도....ㅋ 딸이 글을 쓰느라 밤을 새는 날이면 사위가 아이를 챙겨 아침밥까지 먹여 등교 시키고 세탁기도 돌리고 설거지까지 다 마무리하고... 일터에 나간다고.... 올 여름 방학때 손주와 점심을 먹었는데 할머니 밥그릇까지 조막손으로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더란다. 외할머니까 가로막으니까 "아버지가요... 할머니를 애껴야 한대요. 그래야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산대요. 설거지는 내가 할 수 있어요." 오매나...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사위에... 외손주다....^^
09/09/06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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