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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주박의 散文노트

위대한 침묵

샘터 표주박 2010. 1. 7. 22:55

 

필립 그로닝 감독의 '위대한 침묵'
해발 1,300m 알프스의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카르투지오회는 가톨릭 교회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수도회입니다. 속세를 벗어난 이 수도원은 방문객과 관광객의 출입을 일체 금하고 그 어떤 기록이나 영상도 거의 전무한 프랑스 봉쇄수도원입니다. 필립 그로닝 감독은 1984년 이토록 대단한 수도원의 일상을 담기위해 수도원에 허락을 청했으나 수도원은 거절하였고 이유는 '준비가 덜 되었다'였습니다. 그로부터 무려 16년이나 지난 2000년에야 비로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촬영을 해도 좋다'는 허가를 얻었다고 합니다. 오랜 설득 끝에 봉쇄수도원 일상의 기록을 전무후무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대사가 없으므로 언어가 주는 편견과 사고를 뛰어 넘는, 침묵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게 되는, 신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는, 오직 침묵을 통해서만이 사물의 본연의 가치를 더 선명하게 발할 수 있다는, 수도원 일상의 168분간의 '긴 침묵의 묵상기도' 속으로 빨려들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30~40분쯤이나 흘렀을까? "무엇을 구합니까"라는 한 수도사의 한줄 대사가 나올 정도로 절대침묵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시간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수도원 주변의 자연풍경이 그나마 수도사들의 단조로운 일상과 대비될 뿐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위한 대중영화는 결코아닙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깨우치게 한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다큐멘타리 보다 더 밋밋 합니다. 수도원에 대한 일체의 설명도 없고 인공조명도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촬영 했기 때문에 화면이 어둡고 초점흐린 영상도 가끔 보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여러번 안경을 썼다 벋었다를 반복하다가 안경알을 닦기까지 했습니다. 감독이 촬영기사 없이 수도사들과 기거하며 자연 조명만으로, 한 장면을 오래도록 찍는 방법으로, 영상에 담았다고 합니다. 침묵속의 수도사들의 얼굴들도 하나둘 눈에 익기 시작하면서 내가 그분들과 일행이 되어 그분들의 생활속으로 들어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침묵 하는 완벽한 동행이 되었습니다. 수사님들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외부와 소통을 차단하고 침묵을 하고.. 우린 수사님들의 일상속에 들어가기위해 침묵하는 168분, 그 긴긴 시간동안 기침소리도 숨소리도 내는 사람조차도 없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나니..." 여러번 반복되는 이 자막은 신에게 다가가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삶의 과정임을 깨닫게 합니다. 하얀 수염이 긴 할아버지 수사의 아이처럼 똘망한 눈, 굽은 등뼈가 애처롭도록 툭툭 튀어나온 할아버지 수사님, 피부발진에 약을 발라주는 또한 분의 정성어린 손길, 요리 하고 산 속의 막힌 수도관도 뚫고 자급자족할 식물들도 키우고..등등의 반복되는 일상.. 노동하고 기도하고 성경읽고.. 일상에서의 침묵은 신과 소통하는 통로가 됩니다. 어느날 할아버지 수사님들이 줄을 이어 하얀 산에 오르고 아이처럼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수도사들의 하얀 눈과 함께 딩구는 하얀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입니다. 봄이 되어 오랜 수도생활 끝에 잠시 햇볕에 나와 형제들과 소담을 나누는 미소... 이러한 정경들이 오랜 침묵 끝에 간간히 느껴지는 행복이라 더욱 따뜻하고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는 분명 종교적인 영화이나 비종교인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영화를 끝까지 졸지않고 본 관객들은 나름 뭔가를 얻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유럽영화상과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는 수작입니다.
10/01/07 -표주박~ 프랑스 알프스산맥에 자리잡은 전설적인 카르투지오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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