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보리차 드릴까요.

샘터 표주박 2010. 3. 16. 15:59



 

3월 8일 부터 절두산 성지 옆에 있는 '꾸르실료 회관 강당'에서 서울 쎄나투스에서 주관하는 레지오단원 교리교육이 월요일 마다 오후 1시에, 4회있다. 어제가 2번째다. 시작 시간에 맞추려면 우리 집에서 늦어도 11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지난번에는 첫째날이라 식사 시간이 어정쩡해서 만두 2개로 때우고 입장했더니 식사를 못하고 오는 사람을 위해 콩시루 떡을 한조각씩 나누어 주는게 아닌가.. 따끈한 녹차와 커피는 얼마든지 마실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었다. 미리 도착한 사람은 떡을 먹을 여유도 있지만 나처럼 분초를 다퉈가며 당도하면 곧바로 기도가 시작되므로 떡을 먹을 시간이 없다. 이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첫날 경험도 있고 해서 어제는 집에서 아예 조금 요기를 하고 출발했다. 혹여 약을 먹것에 대비해 작은 음료수 패트병에 보리차를 준비해 가방에 담았다. 덕분에 점심을 먹고 출발하느라 5분쯤 늦었다. 이미 까떼나 시작기도와 묵주기도 1단을 바치고 있었고.. 나이 지긋하신 형제분이 자신의 옆자리를 만들어 주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앞에서 세번째 줄이다. 나도 함께 서서 묵주기도를 바쳤다. 기도가 끝나고 강의가 30 분쯤 진행될 무렵 내게 자리를 마련해 주신 옆의 형제분이 부스럭 거리더니 콩떡을 꺼내 먹는게 아닌가. 모두들 강의 하시는 수녀님과 교재에 집중하고 있는데.. 신경이 쓰인다.. '강의중에 떡을 먹다니.. 여자도 아닌 남자분이? 그것도 앞에서 3번째줄인데..' 옆에서 먹는 소리가 나니까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나누어준 교재에 빼곡히 메모하며 일부러라도 무덤덤해 지려고 노력하다가... '여자들만 가득한데 무척 시장하셨나봐.. 하긴 2시가 다 되었으니 참을 수가 없었겠지.. 저러다가 체하면 어쩌나.. 물이나 마시고 드셔야 할텐데..' 이젠 걱정이 앞선다.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물 없이 떡을 먹으면 영락없이 체하는 내 기준으로... 내 가슴마저 답답해 오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가방속에 물이 퍼뜩 떠오른다. 그런데 컵이 없으니 어쩐다? 그냥 다 드려?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들고 "형제님, 보리차 드릴까요?" "아.. 네.. 조금만 주세요" 하면서 간이 의자밑에서 컵을 꺼내 내앞으로 내민다. "형제님, 머리카락이 있는데요." "아.. 괜찮습니다. 그냥 주세요" 이미 마시다 조금 남은 녹차 종이컵에 머리카락이 빠져있다. 강당 바닥 재질이 물을 쏟아 버리기엔 적합지 않아서 망서려진다. 다시한번 괜찮다고 하시기에 머리카락이 보이는 종이컵에 가득 부어 드렸다. 만약 내가 마실 물이었다면, 내 가족이었아면 손가락으로라도 머리카락을 집어내고 부어 드렸을텐데.. 볼펜을 거꾸로 잡고라도 꺼냈을 텐데.. 씻지도 않은 손가락으로 함부로 꺼낼 수도 없고... 그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2010/03/16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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