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귀한 선물

샘터 표주박 2010. 8. 18. 23:52


 

 

나와 동갑나기 교우 엘리사벳은 딸을 일찍 출가시켰다. 손자가 올해 6학년이되었다나? 중학생이 되었다나? 게다가 학생회장이란다.. 나는 결혼도 늦게 했고 아들도 늦게 두었고 게다가 그녀석들이 여적 장가를 들지 않으니... 엘리사벳이 손자 '자랑'을 할 때마다 나를 배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나는 엘리자벳의 손자 이야기는 얼마전 블로그에도 소개하기도 하였건만..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할머니 손을 빌리지 않고 그 작은 손으로 씻으며 "아버지가 그러는데요 할머니를 아껴야 나랑 오래 산대요" 라고 했다던 그 손자 자랑을 할때 얼마나 대견하고 부러워했던고.. 그런 내가 조금은 안스러웠는지 늘 조심스레 말문을 열곤 하던 그녀가 며칠 전, 활짝 웃으며 꽃과 리본으로 포장한 예쁜 선물 봉투를 내게 내민다. "무슨 선물 인데? 제목도 모르고 받어?" "우리 딸이 서툰 솜씨로 만들었어. 미사보 주머니야. 어설프지만 받아줘!" 엘리사벳 딸은 MBC드라마 작가다. 밤새워 글을 쓰느라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게 뻔한데 언제 이런걸 다 만들었을꼬... "바쁜 딸인데 무슨 시간이 있다고 퀼트까지 하나. 나야 감사히 쓰겠지만 말야. 고맙다는 인사나 전해줘!" "막달레나 친구는 딸이 없어서 이런거 아주 귀히 여길거라고 했어. 주머니에 '막달레나'라고 본명도 새겼어!" "아이고 야! 감격! 또 감격이네! 내게 이런거 선물해 줄 사람은 아직 없거든. 진짜 고맙다고 전해 줘. 죽을때까지 쓸게! 하하하..." 나도 소싯적엔 아이들 잠옷이며 반바지 정도는 만들었고, 코바늘 대바늘로 아이들 털바지, 털쉐타 남편 쟈켓정도까지 떠서 입히기도 했다. 내 원피스도 코바늘로 떠서 입고 뽑내기도 했고. 어디 그뿐이랴 소파의 쿳숀카바도 깔고 앉는 방석 카바도 식탁보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커틴까지도 욕심내어 창가에 걸었거늘.. 까마득히 잊고 지낸지가 몇십년이다. 오래되니까 변색도 되고 실증도나고 늘어져서 볼 품없이 되어버려 다 버리고 세월속에 묻혀 이젠 그 흔적조차도 없어져 버렸다. 오랜만에 퇴색된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상상으로 다시 입혀보고 창문에 걸어본다. 이젠 간편한 것이 좋다. 무엇이고 정리하고 싶다. 하지만 서툰 솜씨로 한땀 한땀 정성을 들인 첫 솜씨 작품, 이 주머니만은 언제까지나... 이세상 다 하는 날까지 간직해야겠다.
2010/08/18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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