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장내방송

샘터 표주박 2010. 8. 28. 10:04


 
낮기온이 32도를 오르내리던 지난 주 어느 날, 남편 바오로와 이열치열로 더위를 다스린다는 심산으로 청계천 재래 상가에 나갔다. 여름이 다 갔다 싶지만 동네에서 편히 신을 수 있는 스포츠용 여성 샌달과 왕골 돗자리, 그리고 종로5가 모약국에서 가족이 함께 복용할 영양제 몇 가지를 구입할 요량으로 가장 빠른 지하철 동선을 머리속에 그려가며 차근차근 순례를 하였다. 평소에 눈여겨 두었던 가게에서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흥정도 없이, 주인이 부르는 대로 주고, 구입하니까 한시간 정도로 볼 일이 끝났다. 더위가 걱정이었으나 가는 곳마다 냉방시설이 잘 되어 문제되지는 않았다. 더위에 지례 겁을 먹고 속전속결로 해결하고 집으로 오려니까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바오로도 내 심사를 알아차리고 "당신이 잘 가는 저쪽 상가에도 가봐!" "넘 더워서.. 우리 노인네 자쳐서 쓰러지면 원망들을까봐 생략하려구요" "허...참... 내 걱정 하는 거야? 아직 그정도는 아니니 둘러봐. 나는 중간지점에서 차나 마실테니 천천히 구경하면서 살거 있으면 사!" "그래주신다면야 좋지요....호호호..." 종로 5가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청계상가 이층으로 올라갔다. 냉방이 은행못지 않게 시원하다. 바오로는 잰 걸음으로 휴계실쪽으로 먼저 갔고 나는 느긋하게 이것 저것 살피면서 촘촘하게 내걸린 옷들을 눈여겨 보며 느리게 걷는다. 아직은 한더위인데도 벌써 가게마다 성급하게 계절을 앞선 긴소매가 내방객에게 간택되기를 기다린다. 나는 언제부터 인지 피부 알레르기 징후가 있어 화사하고 폼나게 하늘하늘한 합성섬유는 피부에 자극이 되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이곳은 청계상가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곳으로 자연섬유 취급점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곳에 오면 꼭 둘러보는 몇몇 곳이 있다. 주로 면소재 취급점이다. "안녕하세요" "네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가게 안쪽 깊숙한 곳에 걸린 T셔츠가 첫눈에 들어온다. "저 안에 걸린 T셔츠....입어볼까요?" "안되는 거 아시면서... 단골이니까... 입어 보세요" 입어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깊숙한 곳에서 자세를 낮추고 안경을 벗고 입었다. 평소에 선호하지 않던 붉은 색상인데 거울앞에 서니 의외로 어색하지 않다. "어울리네요" "그래요? 그럼 살까? 얼마죠? 여름이 다간 저녁때니 잘해 주세요...ㅎ" "여기가 배추파는 곳인가요? 아직 여름이어요 파장도 아니고...ㅎ" 배추장사 비유에 서로 파안대소를 하며 유쾌하게 값을 치루고 붉은 T셔츠를 입은채로 남편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지하철을 타기위해 천천히 걸어 건물밖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두세개 밟았는데 '장내 방송' 멘트가 건물 공간을 흐른다. 늘 그랬듯이 나와는 거리가 먼... 뉘 이야기려니.. 무심히 지나쳤다.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 상가 ㅇ열 ㅇ호 ㅇㅇㅇ에서 붉은색 T셔츠를 사신분이) 안경을 두고 가셨습니다.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어찌 어찌하여 안경이라는 말이 귀에 걸려 들었다. 얼른 얼굴을 만져본다. 내 얼굴에 걸려있어야 할 안경이 없다. 동시에 남편과 시선이 마주쳤다. "앗!... 내 안경이야..."
2010/08/28 -표주박~

 

'표주박의 散文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야!  (0) 2010.09.30
사람이 더 무서워요...^^  (0) 2010.09.19
귀한 선물  (0) 2010.08.18
바보들의 해프닝  (0) 2010.08.12
보리차 드릴까요.  (0) 201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