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난감

샘터 표주박 2011. 6. 23. 15:25
 

 

 

"저 사비나예요. 집이신가요? 지금 가도 되겠습니까?" "응... 그런데... 왜?" "그냥 뵙고 싶어서요..." 핸폰을 통해 들리는 사비나의 목소리다. 폰에 부재중 기록이 남은걸 보니 옥상에 잠시 올라간 사이에 전화를 또 했었나보다. 웬일일까? 연거푸 두번씩이나 전화를 했게... 어제 저녁즈음, 후끈 달아오른 대지를 식히는 장맛비가 부실부실 내리기 시작했는데 성질 급한 사비나가 그새 우리집 계단을 올라 현관앞에 우뚝 선다. 노오란 백합과 검붉은 장미를 촘촘히 꽂은 화사한 꽃바구니를 내 앞에 불쑥 내민다. "제가 꽃꽃이를 배운 첫 작품이어요. 구역장님께 선물 드리려구요" "아니. 수술받은 남편 수발하기도 힘들텐데 꽃꽂이는 또 언제 배웠어..." 지난 토요일, 특전미사 중 말씀의 전례를 마치고 헌금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우연히 반대쪽에 시선이 갔고 그때 위 절제 수술을 받은 베드로 형제님이 상체를 구부리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옆에 남편을 바라보는 사비나의 근심스런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미사시간 내내 그쪽으로만 신경이 모두어졌다. 이와같은 상황에서도 베드로 형제님과 사비나 부부는 미사참례 의무를 다하는 것을 확인했다. 미사 후 성당 마당에서 베드로 형제님 이야기를 들으니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 하던 중 갑자기 힘이 쏙 빠져서 꼼짝 할 수가 없었단다. 사비나가 사무실로 급히 뛰어가 직원이 먹으려던 냉장고속의 바나나 우유를 한통 얻어와 몇 모금 마시고 잠시 안정을 한 후에야 간신히 성체를 모시러 제대앞까지 걸어 나갈 수 있었단다. 사비나와 바오로가 베드로 형제님을 부축하여 천천히 집으로 왔었다. 그랬는데도 나는 우리집에 현관을 넘은 순간 그 일은 까마득히 잊고 내 코앞의 일에 몰두하며 지냈다. ......이럴줄 알았으면 안부 전화라도 한번 했으면 이토록 면구스럽지는 않을 것을.... ......내 머리속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꽃바구니를 받을 만한 기록이 떠오르지 않고... ......사비나가 알리 없는 내 생일은 이미 5월에 지나 갔고 영명축일은 7월이고...^^ 얼떨결에 꽃바구니를 받아들고는 미안한 마음에, 더욱이 첫 작품이라는 말에 당혹하여 멋적게 웃었다. "딸과 사위가 오늘 갔어요. 백년손님 치닥거리 하느라 그간 눈코 뜰새없이 바빴어요. 오늘 보내고나니 속이 다 후련해요. 이것도 받으세요..." 키가 큰 사비나 얼굴과 노란 꽃바구니를 번갈아 보는 내게 커다란 수박을 또 건넨다. "어머나... 꽃에 넋을 빼았겨서 수박은 못봤네. 이 무거운 걸.. 오늘 복날도 아니잖아.." "늘 염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고마워요... 작지만 제 마음의 표시여요...." 우리집은 사비나 집에서 50여m 쯤 떨어진 지근 거리이기는 하지만 손잡이도 없는 커다란 꽃바구니를 한손에 들고 또 한손에는 수박을 들고 오기에는 불가능하다. 필시 집앞까지 누가 거들어 주었지 싶어... "이거 혼자들고 왔어?" "그럼요.. 혼자들고 왔어요" 사비나 전화를 받고는 사우나를 다녀와 단잠에 빠진 바오로를 깨울까 말까 망서리고 있었는데 사비나가 이미 현관에 당도했기에.. 어정쩡하게.. 서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마시자" "아니예요. 빨리 가야해요.. 뵈었으니 됐습니다.." "그럼 아래까지 바래다 줄게...." "아니예요.. 비오는데 내려오지 마세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내려놓으니 내려오지 말라고 극구 말린다. .....그때 번득 스치는 생각.......... .....그래... 베드로 형제님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구나!... 혼자서는 다 못들고 오지... ..... 내가 내려가면 집안으로 모셔야 하는데... 바오로가 팬티바람으로 자고있으니... ......이를 어쩌나... 내려가 본들 소용이 없잖아........
2011/06/23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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