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울 어머니 생각에...

샘터 표주박 2011. 11. 24. 00:38



 

화요일 미사참례후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종이컵 자매들이 '야고보'집에 모였다. 바오로와 남대문에 나갔다가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패딩 반코트를 입었던 터라 "이 옷 어때?" "멋져요. 그러지 않아도 10년은 젊어지셨다 했는데요" "무지싸게 샀어. 싼맛에 입는 기분도 괜찮아" "싼 옷 같지 않은데요. 얼마에 샀는데요. 우리도 거기 알려주세요" 대여섯명이 '젊어 보인다'느니.. '오늘 당장 나가자'느니.. 이구동성이다. 화요일은 복지시설 설거지 봉사하는 날이므로 설거지 끝내고 2시 정각에 면목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헤어져 집에 거의 다 왔을즈음 뒤에서 누군가 부른다. 십수년전 교리봉사 교육을 함께 받은 자매인데 우리들 이야기를 듣고 뒤따라 왔단다. 남대문에 동행하고 싶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며 하나 사달라는 부탁이다. 옷은 각자 취향이 다르기에 남이 대신 구입하기가 쉽지않다며 극구 사양했다. "면목역에서 2시... 시간되면 나오세요..." "제가 좀 바빠요. 갈수 있을 런지.. 전화번호 가르쳐 주세요.." 그 자매는 십수년전 교리봉사자 교육과정에 동참했으나 몇회만 참석하다가 접었기에 본명도 모른채 눈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다. 복지 시설 설거지를 끝내고 젖은 손 마를겨를도 없이 늦을세라 면목역으로 급히갔다. 이미 몇명 나와있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그 자매가 보이지 않기에 승차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폰에 흔적을 남긴 그 자매 번호를 꾹 눌렀다. "면목역으로 오실겁니까?" "네.. 지금가고 있습니다" "그럼 승차장으로 내려오세요. 거기서 기다릴게요" "네" 일행이 묻는다. "누군데.." "오래된 자매야.. 그대들도 보면 낯이 익을거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저쪽 계단밑에서 뛰어오는 자매님 모습이 보인다. 숨을 헐덕거리며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남대문까지 갈 수가 없다며 내게 돈을 건넨다. 난 또 사양했다. "지금 가정 도우미하러 노원으로 가는길인데요. 시골에 계신 95세 어머니에게 따뜻한 겨울 옷 하나 보내 드리고 싶어서요. 제가 남대문까지 갈 시간이 없어요. 지금도 막 뛰어왔거든요. 적당한걸로 하나 사다 주세요. 싸고 좋아서 그래요." "이를 어쩌나... 요즘은 젊은사람 디자인이 주류여요.. 게다가 옷은 취향이 다르면 입지 않으실텐데.. 옷 만큼은 남인 제가 대신 사기가 내키지 않네요..." "정히 그러시다면 제가 입어도 되니까 검정색이면 되겠어요. 부탁해요...." '95세 어머님'께 따뜻한 패딩코트하나 마련해 주고픈 딸의 효심에 마음이 짠하다. 엊그제 11.20. 8주기일을 지낸 울 엄니도 살아계시면 92번째 겨울을 보내실텐데... 하는 생각에.. 잠시 울컥해져서 더 이상 그럴싸한 핑계로 거절 할 수가 없었다. 함께 간 일행들은 자기 취향대로 옷을 입어보느라 분주하고 나 또한 일면식도 없는 95세 어머님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입었다 벋었다를 반복하며 거울에 옷을 비춰본다. 내 옷을 보고 부탁했다 했으니 거의 동일한 디자인으로 검정색을 골랐다. 그리고는 폰에 찍힌 번호를 꾹 눌렀으나 연결이 되지 않는다. 도우미 하느라 받을 수 없나보다. 그럼에도 빨리 알려주고 싶어 일행들이 보는 앞에서 문자를 보냈다..... "검정색으로 샀습니다. 5천원 남았습니다. 내일 미사때 갖고 갈게요"
2011/11/25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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