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해후...

샘터 표주박 2013. 2. 1. 22:48




 

겨울비가 여름비처럼 내리는 2월 첫 날, 10시 미사 후.. 야고버 휴계실에서 종이컵 차를 가운데 놓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염색할 시기가 한참이나 지나 하얗게 밀고나온 다 풀린 파마머리가 가뜩이나 작은 얼굴 핏기까지 빼앗아 피곤해 보인다. 그녀의 인생여정에 깊숙히 빠져든 며칠, 나도 그녀가 되어 밤잠을 이루지 못해 입안까지 다 헐었는데... 본인이야 오죽하랴.. "비오는 날은 파마를 피하라는데.. 오늘 나랑 같이 파마 할까?" "요즘은 내 정신이 아니예요.. 도무지.. 다 귀찮아요.." "며칠이면 설인데.. 아들집에 그머리로 갈건가?" "아무려면 어때요.." "그러니까.. 하얀 머리때문에.. 늙었다 소리듣잖아" "ㅎㅎㅎㅎ" 그녀와 나에게 매일미사는 일과이므로 그날 이후 만나기만하면 그일에 관해 여러이야기를 나누었다. 딸들은 지금 당장 아버지와 합치기 보다는 '우선 한번' 만나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친구처럼' 지내면 좋겠다는 간곡한 바람이라고.. 그녀도 마음 한편으로는 다 늙으막에 공장도 운영 한다니 '내 눈으로 확인'도 할 겸 해서 자녀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녀들의 원대로 차에 올랐고 그리하여 해후가 이루어졌다고... 60평 규모의 공장에 남자 8명 주부 8명이 작업하고 점심은 공장주방에서 조리하여 직원들과 해결하므로 77세 노인이 혼자 생활하기에는 그다지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더란다. 한방을 쓰던 부부였지만 너무나도 오랜동안 한맺힌 눈물을 흘리게 했던 '웬수'라서 마주 본 순간 온몸의 모공까지 오싹해지더라고.. 19세기에 첫 선 보는 처녀총각도 아니건만 서로 시선을 피한 채 얼굴을 아래로 떨구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자녀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낸 첫 마디가... "당신 많이 늙었네!" "이보시오! 내 나이 70이요. 그럼 젊을 줄 알았소!" 명치끝에 매달린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데 좋은 말이 나오겠는가! 또 다시 적막이 흐르자 주머니에서 무얼꺼내어 그녀 앞에 내 놓으며 "이거 가져가시요." "그게 뭐요?" "얼마전에 교통사고를 내서 보상해 주고나니 얼마안되오..용돈이요.." "뭐요?. 용돈? 이보시요! 필요없소! 네아이들 어려서 뒷바라지 할 때는 한푼 안주고 나몰라라 딴 여자랑 실컷 놀아나더니 이제와서 용돈이라고? 이거 내가 받을 줄 알았소? 아이들이 하도 한번만 만나라고 졸라서 왔소!" "내가 죄인이오. 미안하오..." 안에서 그녀의 큰 소리가 들리자 자녀들이 급히 들어와 부정맥 환자인 엄마를 진정시키고 수세에 몰린 아버지를 위한 변명도 잊지않고.. 현장 수습을 했다고. 사죄의 뜻으로 내놓은 적지 않은 돈은 옥신 각신 끝에 결국은 아들이 엄마 몫으로 관리 하기로 타협을 했다고.. 그리고는 속죄의 뜻으로 생전에 끔찍히도 아껴주신 장모님 산소에 가고 싶다고 하여 아들 딸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외할머니 산소에 성묘 갈 날자도 잡았다고.. 그럼에도 그녀는 치미는 울화를 억제할 길이 없어 "당신은 좋겠소! 늙그막에 저렇게 반듯한 효자 효녀를 거저 얻었으니!" 라고 빈정댔지만... 어찌 끊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의 천륜을... 이번 설엔 수십년 동안 연을 끊고 지냈던 큰아버지 댁에 아이들만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중이라고...
2013/02/01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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