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詩作노트

荒蕪地

샘터 표주박 2002. 5. 3. 14:22





荒蕪地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4월이면 어김없이 한두번은 되뇌어 보는
T.S. Eliot의 長詩 荒蕪地...

제1부 The Burial of the Dead
죽은자들의 매장의 첫 대목이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그랬다...그랬었다.

중학교 다닐 때 4월의 유혈 함성이 그러했고
그 이듬해 오월의 무장 탱크가 그러했고
또 다른 오월,
검은 베레모 무차별 학살이 그러했고
거슬러 여섯 살 때, 민족상잔이 그러했다.
훗날, 성직자들이 촛불을 밝혀 들고 거리를 누비고
잡초들이 머리에 띠를 맨 민주항쟁의 내력이 그러했다.

이 모두,
봄비를 막아 대지의 엽록소를 죽인
"4월은 잔인한 달" 이었다.

세대가 바뀌어
그 풀들이 무성히 자라나 만든 세상도
진정한 푸르름은 요원하기만 하다니...

진흙탕 속의 숱한 개싸움이 그러했고
이익집단의 밥그릇 다툼이 그러했고
생존의 터를, 청정 해역을 잃은,
가방 큰 세계화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었다.

술주정뱅이 아들이 자라나 술수정뱅이가 되고
못된 시어머니를 미워하던 며느리가 닮아가듯,

나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4월은 잔인한 달" 이라-
"죽음의 대지는 인간의 탓" 이라-
언제까지 뇌일 수 만은 없지 않은가?

인간이 만든 죽음의 대지여-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될 수는 없겠는가?

성 어거스틴은
"타락한 인간이 부패한 사회를 만들고
부패한 사회가 다시 타락한 인간을 재생산 한다는
原罪의 문화적 유전성" 을 지적했다.

이를테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문제는 내안에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는 나로 부터 끊어지지 않고서는
어떤 제도, 어떤 구조로 개혁한다 할지라도
그 무슨 소용이 있으랴...
공허한 헛짓에 불과한 것을...

묵은 내 의식의 족쇄를 풀고
고갈된 내 상념의 뜰에
늘 푸른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

내가 변해야 내 가정이 변하고
내가 속해있는 집단이 변한다.

또다시
이념이 어쩌고 정체성이 어쩌고
어지러운 혼돈의 계절풍이 밀려온다...

.
.
.

봄볕이 따스한 날,
망우리 이름모를 묘지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에 4월의 노래를 전한다.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빛나는 꿈의 계절아....

박목월님의 싯귀도 흐르고 내 소망도 흐른다.



"오늘이...."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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