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내린 폭우로 소중한 생명과 단란한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실의에 잠기신 수해지역 주민의 슬픔과 고통에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배수지 펌프시설 관리소홀이 빚어낸 인재였다는 보도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여서 우울하게 합니다. 길가던 행인이 가로등 전선에 의해 감전사를 하다니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사전예방이 가능한 사고가 거듭되고 있음에 실로 아연실색할 따름이옵니다. . 30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작업에 여염이 없을 피해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더불어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과 유가족님께 삼가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루 바삐 일상을 회복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비...그리고 추억 1.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우산 파란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며 걸어갑니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 그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종종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 송, 송, 나도 불렀고, 내 아들도 불렀고, 손주와 손녀가 또 다시 부를 정겨운 동요다. 초등학교 다닐 때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불렀지만 조그만 가슴은 근심 걱정이 가득하였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비오는 날은 참으로 우울했었다. 오빠는 오빠이기에 동생은 동생이기에, 턱 없이 모자라는 우산을 늘 양보해야 했으니... 비오는 날이면 등교할 걱정이 태산같았다. 어쩌다 찢어진 紙雨傘이라도 내게 차례가 오면 그야말로 감지덕지 했었다 '비옷과 우산과 장화를 내 어찌 감히 언감생심 바랄 수 있으랴....' '이러한 딸의 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던 어머니 마음은 또 오죽했으랴....' 학교가 파할 무렵에 빗줄기가 굵어지면 어김없이 우산과 장화를 싸안고 나타나는 부잣집(?) 엄마를 둔 짝꿍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내겐 그런 행복이란 먼 나라 동화속 이야기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더욱 비가 싫었다. 그 당시만 해도 흰 옥양목 교복을 삶아 빨아 풀먹여 입을 때이므로 비를 맞고 등교할 생각을 하면 차라리 몸을 숨기고 싶었다. 전기 다리미도 없던 시절이어서 주물 다리미 숯불이 꺼질세라 부채질로 몇 번씩 숨쉬기를 도와 주어야만 했으며 혹여 숯검댕이라도 묻을까봐 조심조심 다림질하여 옷걸이에 걸어둔 정갈한 교복이었으니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돌이켜 보면 그러한 이유로 몇 번은 등교를 하지 않은 것도 같다.... 아득한 옛 시절의 소박한 이야기들이 이리도 곱게 채색된 한폭의 수채화로 내 삶의 면면에 수액으로 흘러 들었으리라 생각해 보며 웃어본다. 2. 조금 형편이 나아졌을 때 방화 "초우" 의 여자 주인공이 노란 비옷을 입고 노란색 장화에 노란우산을 뱅글뱅글 돌리며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방울' 처럼 피어나던 해맑은 미소가 아직 내 가슴에 묻혀있다. 그녀의 환상적인 눈동자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었으니까... 그리고 얼마전 이곳 칼럼에도 소개되었던 뮤지칼 "쉘부르의 우산" 의 주인공 까뜨리느 드뇌브의 청순미속에 깃든 우수의 빛깔과 첫 장면의 형형색색 우산행렬도 잊지못할 장면의 하나다 어찌 그 뿐이랴 그 당시 흔치않은 늘씬한 몸매에 판탈롱 넒은 바지를 펄렁이며 우산을 중심으로 현란하고 세련된 율동을 펼치던 "펄씨스터즈의 라 피오자" 굵직하면서도 윤기가 흐르는 허스키 보이스로 젊음을 촉촉히 젖게했던 "성재희의 보슬비 오는 거리"도 아련한 물안개와 함께 떠오르는 곡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 B.J. Thomas, Singing In The Rain / Gene Kelly, 그리고 가곡 "그집앞" 은 내 부동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결혼 전엔 비 오는 날이면 이런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물론 비옷과 장화와 우산으로 완전무장하고 한적한 신작로를, 논두렁 밭두렁을, 마냥 걸었었다. 동행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신촌에서 수색을 지나 능곡까지.... 아니면 샛강까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걸었던 나의 단골 코스였다. 그땐 줄기차게 쏟아지는 장대비가 어찌 그리 좋았을꼬.... 3. 꼭 일년 전 작년 이맘때 도봉산엘 갔었다. 개지도 흐리지도 않은 날씨이기에 전화한통 받고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우산하나 달랑 배낭에 담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바오로 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담소하며 능선에 올라섰을 즈음 이게 웬일이랴... 순식간에 하늘을 가르는 섬광이 일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번쩍! 번쩍! 우르르 꽝! 꽝! 꽝! 꽝!.... ' 하늘의 섬광이 내 머리를 삼킬 듯한 공포에 반사적으로 우산이고 뭐고 팽개치고 서로 껴안으며 땅에 펄썩 주저앉으며 몸을 낮췄다 . 온몸에 힘이 쪽 빠지고 한발자국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다리는 후둘거렸다 그런 긴장된 순간 속에서도 온몸을 간지르는 빗줄기는 전혀 싫지가 않았다. 공포에 질려 땅바닥에 주저앉던 행위는 '까르르 까르르' 웃음꽃을 피웠고 오히려 온몸을 감싸안는 빗줄기의 촉감이 그리도 감미로울 수가 없었다. 얼굴과 얼굴 마주보며 잊고 지냈던 동심으로 걸어 들어가 발걸음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물먹은 등산화의 철퍽철퍽 연주에 발을 맞추며 우리는 흙탕물에 몸을 맡긴채 어린아이 처럼 마냥 즐겁기만 했다. 4. 지난 일요일(15일)은 우리 본당 예비신자 성지순례가 있었다. 한국교회사를 공부할 땐 순교성지를 방문하여 성현들의 얼을 되새기며 그 분들의 신앙심을 이식시켜 주는 교육의 일환인 것이다 새벽에 내린 기습폭우로 중랑천변 저지대가 雨水 역류로 침수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때문에 몇몇 예비신자는 성지 순례길에 동참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나 미리 예정된 행사이기에 관광버스 2대가 성지를 향해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첫 번째 순례지 새남터 성지 방문 때는 기세가 한풀꺽인 빗줄기여서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두 번째 방문지 절두산에 당도하였을 때는 사정이 매우 달랐다 새벽에 내린 폭우로 이미 지하 진입로가 침수되어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우리는 할수 없이 500m정도를 도보로 가야했다. 언덕을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보슬비였던 빗줄기가 유품 전시관 관람을 마친 후 예비신자가 차에 오를 즈음엔 폭우로 변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고령의 예비신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몇 분 계셨고 더욱이 아가를 안고 성지 순례길에 동반한 젊은 부부도 있었기에 500m거리는 5km로 느껴지는 마음의 거리였다. 동행하신 원장 수녀님과 봉사자와 예비신자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주님께 기도하며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였으니 이 또한 영원한 추억으로 채색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신앙속에 튼튼한 뿌리로 자리매김 할 먼 후일을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