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 수면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맑게 개인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새를 바라보다가 문득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의문하나를 큰 소리로 물었다. "여보세요, 당신은 창공을 날으는 지혜로운 자 이기에 다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어디에 넓은 바다가 있다고 들었는데 바다란 어떤 곳이며 어디에 있나요?" 새도 평소에 궁금하던 것이 있던차에 물고기를 향해 말했다 "나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답니다. 하늘이란 곳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디에 있죠?" 우리는 흔히 닫힌 사고를 소유한 사람을 일컬어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비유를 든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중에 어디 우물안의 개구리 뿐이겠는가? 눈 뜬 장님 같은 인간 물고기와 인간 새도 허다하리라.... 이런 이야기도 있다 두메산골 어느 농부 집에 송아지 두 마리가 태어났다. 어느새 송아지들은 자라나 코뚜레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형 송아지는 코뚜레 없이도 곱절이나 일을 잘 하겠노라고 주인에게 통사정을 해서 면하고 동생 송아지만 코뚜레를 하게 되었다 형 송아지는 약속대로 열심히 일했다. 심지어 동생 송아지가 한가로이 쉴 때도 열심히 힘을 내어 일했다. 그런데 형 소는 차츰 꾀가 나기 시작해서 일을 하다가도 피해 달아나기 일수였고 급기야는 자신을 잡으러 온 농부에게 뒷발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소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형 소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에게 물어 보니 일도 않고 꾀만 부려 도살장으로 보내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의식을 풍자하기 위해 의인화하여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나는.... 물 속에 살면서도 물을 알지 못하는 우매한 물고기는 아니었을까? 하늘을 날으면서도 하늘이 어디냐고 묻는 멍청한 새는 아니었을까? 주어진 자유를 나태로 일관하다가 필경 도살장으로 끌려갈 미련한 소는 아니었을까? 나는 코뚜레를 한 소처럼 주어진 임무에 충실히 순응한 일꾼이었을가? 하느님께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자유의지의 은덕을 구가하며 내가 선택한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최선을 다했던가? 자극에 따라 반응하는 비이성적인 행태에 의존한 행동은 없었을까? 어둠의 골짜기를 방황할 때 나는 과연 그분께 온전한 기도로 의탁했던가? 자문해 본다 나는 빛도 아니고 밤도 아니다. 그러나 불꽃 하나가 내 내부에서 쑤시고 나와 나를 불사른다. 나는 빛이 삼켜 버린 밤이다 어둠속에서 고통을 겪고, 괴로와 신음하며, 비틀거리면서, 나는 잠을 떨쳐버리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잠시만이라도 서 있으려고 애를 쓴다. 하잘 것 없지만 결코 거리낌없는 호흡이 내 안에서 행복과 권태와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끝없이 애를 쓰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