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램이 있다면 며칠 전 밤 10시가 훌쩍 지난 시각에 남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은 술을 매우 즐기지만 2차 3차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 동창회에 참석하였다 일찍 귀가하여 자리에 든 후였다. 깨우지 말라기에 별 생각없이 지나쳐 버렸는데 우리 큰녀석을 자신의 조카와 다리를 놓아주면 어떻겠느냐고 묻더란다. 그 일로 전화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 친구와 남편은 어려서 부터 한동네 아래 윗집에서 초등부터 대학까지 같이 다닌 그야말로 막역한 친구이기에 편하게 건네본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털컥 내려 앉으며 숨이 막히는 걸 느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아들녀석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니 뒷머리가 뻣뻣해 지는 것 같다. 혼기에 접어들면 스스로 배필을 찾기란 쉽지 않아서 누군가가 계기를 만들어 주게 마련이다. 친척이든, 친지이든, 직장의 상사이든, 동료이든, 아니면 친구이든...... 우리때만 하여도 대부분 집안 어른들의 주도로 결혼이 이루어졌지만 시대의 흐름으로 자유분망한 연애결혼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진지 오래이고, 사귀다가 싫어지면 부담없이 헤어지는 게 요즘 신세대들의 연애관이다. 과거에는 어찌 하다가 이성을 만나 몇 번 차라도 마시고 극장에라도 가게 되면 운명으로 받아 들였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마음과 정성을 쏟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그러나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정한 연인처럼 보여도 애매모호한 선에서 교제를 하다가 각기 다른 상대를 골라 결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남편에게 쐐기를 박았다. 아들이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실체보다 과포장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헐값으로 흥정되는 것은 더욱 싫다. 위장된 상품은 풀어보는 순간 서로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친지가 다리를 놓는다 할지라도 그럴싸한 조건부터 부풀려 나열할 터이고, 구미 당기는 조건이란 게 어쩌면 속빈 강정과도 같을 수 있겠기에... 결혼은 조건과 조건의 만남이 아닌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어야 한다. 진실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만남이어야 한다. 결혼하는 10쌍 중에 4쌍이 헤어진다는 작금의 통계는 조건에 의해서 일륜지 대사를 그르친 허상의 결과이므로 상처뿐인 파경으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하느님으로 부터 허락받은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부모로부터 강요당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사려깊은 선택은 존중되어져야 하고 그것이 바로 행복만들기의 출발점임을 몇번이고 다짐하였다. 진리를 제외한 모든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영원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도저히 변하지 않을것 같던 우정도 변하고 지고 지순한 사랑도 한결같지 만은 않다. 다만 슬기로움이 그것을 극복할 뿐이다. 바램이 있다면, 내 아들 만큼은, 조금은 지혜로운 배필을 만나 서로를 보완하면서 절대자가 거둘 때 까지, 헤어짐 없이 살아가는 6쌍에 속하길 바라는 에미의 바램이다. 니이체는 『人間的인 너무나 人間的인』 에서 "최량의 친구는 최량의 아내를 얻는 것이다. 좋은 결혼은 우정의 재능에 바탕을 두는 것이니까" 라고 말했다. 소박한 우정같은 사랑을 만나 '사랑보다는 도리가 우선'임을 아는 지혜로운 반려자가 최량의 아내, 또는 최량의 지아비가 아니겠는가 먼 훗날 그들이 우리 나이 되었을 때, 앙드레 지이드가 노래했듯이 그 시절, 나의 말은 노래였고, 나의 걸음걸이는 춤이었다. 하나의 리듬이 나의 사상을 날고 나의 존재를 다스리고 있었다. 나는 젊었던 것이다......라고 젊음을, 사랑을, 인생을 찬미 할수 있으리......... -표주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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