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하얀 손의 작은 거인

샘터 표주박 2003. 6. 16. 09:56






★하얀 손의 작은 거인


화사한 햇살이 따사로운 날, 바오로와 토요특전 미사 참례하였다.

새로 부임하신 주임신부님은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우린 그분들의 애환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라는 요지로 장애인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을 그리스도 사랑으로 담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장애인들의 행복 추구권 부재가 그나라의 삶의 질의 척도일 수도 있다.
정부차원의 복지 정책 미흡만 탓하며 우리들의 몫은 애써 외면하였고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어쩌다가 한 번 길을 비켜 준 것으로, 어쩌다가 한 번 거리에서 몇 닢
얹어 준 것으로, 마치 인간의 도리를 다 한냥 자기 합리화로 고개를 처들고.
그들보다 더한 일상의 이기심을 십자가상에 호소한 건 또 얼마인가.
내게 지워진 짐의 무게 때문에 살이 내리고 뼈가 깎인다고 예수님을 얼마나
고달프게 졸라대며 목까지 차오른 욕심을 청하기만 하였던가. 부끄럽다

강론을 마치신 신부님은 흰 장갑을 끼고 제대 앞으로 나오시더니,

"제가 수화를 할 줄 압니다. 미숙하지만 여러분들도 제 동작을 따라
장애자들과 하나가 됩시다"

미리 준비하신 CD에선 변집섭의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가 흐르고
성전은 일순간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로 일렁인다.

신부님의 손놀림으로 생명을 얻은 노랫말이 허공을 가로질러 우리들 가슴에
여울져 살아있는 맥박으로 흐른다
신자들의 입가엔 미소가 배이고 신부님의 하얀 손길따라 눈빛이 반짝인다.
촉촉한 사랑의 수액이 마음결로 흐르고 반짝이는 눈물 한방울 맺힌다
메말랐던 가슴의 흙덩이들이 촉촉하게 녹아내려 참사랑의 씨앗을 파종하는
작업이다.
하얀 손끝으로 빚어낸 투명한 구슬들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꿰이는 순간이다.






그대 어깨위에 놓은 짐이 너무 힘에 겨워서
길을 걷다 멈춰진 그 길가에서 마냥 울고 싶어질 때
아주 작고 약한 힘이지만 나의 손을 잡아요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줄께요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때론 내가 혼자뿐이라고 느낀적이 있었죠
생각하면 그 어느 순간에서도 하늘만은 같이있죠
아주 작고 약한 힘이라도 내겐 큰 힘 되지요

내가 울 때 그대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서 오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





남편과 앞자리에 앉은 나는 가슴이 뭉클하여 더 이상 신부님의 손 놀림을
따라 동작을 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손을 가슴에 포개고 눈을
감았다. 마구 헝클어져 있던 마음들을 모두니 굽이굽이 마다에서 정갈한
샘물로 솟아나는 하느님 사랑...



"가슴이 따스한 신부님을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는 또 다른 몫으로, 당신 아들의 대리자를,
저희들을 위하여 보내 주셨습니다...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느님!
하얀 손의 작은 거인에게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시옵소서"


이상한 일이다. 장애자를 위한 기도이어야 함에도....
보좌신부님이 190cm를 넘는 거구이신지라 상대적으로 조금 작아 보일뿐,

"신부님! 당신은 결코 작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은 하얀 손의 작은 거인.....!!!!"








꽤 오래 전, 우리 본당에는 농아 부부가 있었다.
하느님은 그 부부에게 중. 고등부 학생 회장으로 선출 될 정도로 똑똑하고
잘생긴 아들을 맡기셨다.

농아 부부는 아들이 신생아일 때 부터 말문을 틔워주기 위해 시골 할머니
곁에서 지내게 하였고, 성장하여서는 농아부모의 보호자 역할까지 해 내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의 존재는 농아부부에겐 삶의 전부였다
자랑이었고, 기둥이었고, 희망이었으며, 살아야 할 목적이었다.

대학 입시준비에 여염이 없던 무더운 여름 날,
체력단련을 위해 아침 운동을 하던 중 심장발작을 일으켜 하느님 곁으로
홀연히 가버리다니.. 들을 수 없어서 일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농아 부부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날, 허무에 몸부림치던 날,
그 때 그 분들의 모습이 신부님의 하얀 장갑끝에서 어른거린다.

부모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 다고 했는데
그 부부 가슴에 새겨졌을 영원히 소멸될 수 없는 별의 영혼이여..


작은 아들 스테파노와 절친한 친구도 소아마비 장애자다.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태평양을 건너가 수술을 받아 보장구 없이
간신히 보행이 가능할 정도이지만....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였으나 이 사회는 그에게 일자리 잠금장치를
열어주지 않았다. 피시방을 운영하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세상....
이건 아니다. 더 푸른 하늘이 엄연히 존재하기에 더욱이 아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인터넷에서 인연을 맺은 아우...

하느님은 그에게 손재간을 선물로 주셨고, 그녀 또한 하느님이 주신
달라트를 갈고 닦아 신림동에서 고전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그녀의 사업장을 찾던 날,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해 맑은 미소와 천진한 세상보기가 천사였었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느님 사랑 실천의 수행자로서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하지만....그녀가...독백으로 내게 들려 주던 말,

"아름다운 길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주일에 교회가는 것 외엔 거의
외출을 삼가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무거운 돌맹이가 되어 누른다.
숙성시켜 삼켜야 할 텐데 영 숙성되지도 않고 삼켜지지도 않는다.
결혼을 포기한 오십이 넘은 처녀....이것도 아니다...




어느 시인은 화사한 햇살에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며
"초 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왠지 눈물겹다" 라고 노래했듯이...

오늘, 신부님의 수화를 따라 하지 못한 이유도 어쩌면....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눈물겨워서..."


                                          2002.05.16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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