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우리 본당에는 농아 부부가 있었다.
하느님은 그 부부에게 중. 고등부 학생 회장으로 선출 될 정도로 똑똑하고
잘생긴 아들을 맡기셨다.
농아 부부는 아들이 신생아일 때 부터 말문을 틔워주기 위해 시골 할머니
곁에서 지내게 하였고, 성장하여서는 농아부모의 보호자 역할까지 해 내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의 존재는 농아부부에겐 삶의 전부였다
자랑이었고, 기둥이었고, 희망이었으며, 살아야 할 목적이었다.
대학 입시준비에 여염이 없던 무더운 여름 날,
체력단련을 위해 아침 운동을 하던 중 심장발작을 일으켜 하느님 곁으로
홀연히 가버리다니.. 들을 수 없어서 일까.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농아 부부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날, 허무에 몸부림치던 날,
그 때 그 분들의 모습이 신부님의 하얀 장갑끝에서 어른거린다.
부모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 다고 했는데
그 부부 가슴에 새겨졌을 영원히 소멸될 수 없는 별의 영혼이여..
작은 아들 스테파노와 절친한 친구도 소아마비 장애자다.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태평양을 건너가 수술을 받아 보장구 없이
간신히 보행이 가능할 정도이지만....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였으나 이 사회는 그에게 일자리 잠금장치를
열어주지 않았다. 피시방을 운영하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세상....
이건 아니다. 더 푸른 하늘이 엄연히 존재하기에 더욱이 아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인터넷에서 인연을 맺은 아우...
하느님은 그에게 손재간을 선물로 주셨고, 그녀 또한 하느님이 주신
달라트를 갈고 닦아 신림동에서 고전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그녀의 사업장을 찾던 날,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해 맑은 미소와 천진한 세상보기가 천사였었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느님 사랑 실천의 수행자로서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하지만....그녀가...독백으로 내게 들려 주던 말,
"아름다운 길을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주일에 교회가는 것 외엔 거의
외출을 삼가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무거운 돌맹이가 되어 누른다.
숙성시켜 삼켜야 할 텐데 영 숙성되지도 않고 삼켜지지도 않는다.
결혼을 포기한 오십이 넘은 처녀....이것도 아니다...
어느 시인은 화사한 햇살에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며
"초 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왠지 눈물겹다" 라고 노래했듯이...
오늘, 신부님의 수화를 따라 하지 못한 이유도 어쩌면....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눈물겨워서..."
2002.05.16
-표주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