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어떤 선물

샘터 표주박 2005. 9. 26. 01:12

 

 

 

 

어떤 선물.... 아카시아 꽃이 온 산을 하얗게 덮을 때 산행을 다녀 온 남편이 다 낡아 너덜거리는 낡은 지갑에 검정색 머리 염색약을 덧칠을 합니다. 보다못한 제가 궁상 맞다고, 하나 사라고 했지요. "당신이 이십년전에 사준건데 왜 버려" "이십년? 생일 선물이었나요?" 남편이 사업으로나 건강으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헤매일 때, 아이 쇼핑이나 즐기자며 들어간 백화점에서 남편이 아무 생각없이 지갑을 만지작 거렸는데 그걸 목격한 제가 망설임도 없이, 배짱좋게, 덥석 사 준 지갑이라고 하네요. 생계가 막막했던 그당시 우리집 생활로는 거금(?)을 썼다고 상세히도 이야기 해 줍니다. 내 머리속에는 흔적도 없는데 남편은 선명히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지갑 이야기를 나눈지 얼마되지 않아 작은녀석이 동남아 출장 다녀 오면서 현지에서는 꽤나 알아 준다는 가오리 껍질로 만든 지갑을 아버지께 드리 려고 사왔습니다. 구슬을 박은 듯 깊은 윤기가 흐르고 하얀 문양도 선명하고 묵직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요번 아버지 생일엔 쓸만한 지갑이나 선물하려 했는데 에미와 feel이 통했다 싶은데 정작 아버지는 "형 줘라. 난 지금 쓰는게 더 좋다" 낡은 지갑에 얽힌 사연(?)을 알리 없는 아들은 더 권하지도 않고 형은 뜻하지 않은 선물에 입이 함박만해 집니다. 한달 전 쯤, 청계천 물길 구경을 하다가 남편은 옆 길가 가게에서 아들이 사 왔던 것과 닮은 지갑을 만집니다. 어디를 보나 짝퉁임이 분명한데 "싸서 좋다" 청계천 물구경을 한지 일주일이나 되었을까? 세탁기 신호음이 울려서 빨래를 꺼내는데 남편 등산복 바지 뒷주머니가 묵직한게 손레이다 망에 감지... 소스라치게 놀라 확인하니 짝퉁 지갑이 팅팅 젖은 눈망울로 나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이 난감함. 이를 어쩐다요... 세탁을 하기전에 분명히 뒷 주머니도 확인 하였것만... 이 무슨 날벼락..!!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으니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한숨만 들이쉬고 내쉬고 하다가 내용물을 조심스레 꺼내어 늘어 놓으니 가관입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각종 카드들은 외관상으로는 멀쩡 하지만...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만원권이 20장도 넘고, 접고 또 접어 은밀한 갈피에 짱박아둔 십만원 수표도 다섯장이나 되고. 이 아둔한 눈에도 비자금인게 한눈에 들어옵니다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걸 따질수도 없는 일이고...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이란게 물먹은 것들을 원형이 훼손되지 않게 손질하는 게 급선무인걸 어찌하겠는가... 그 조그만 지갑 사이사이에 살림살이가 참 많이도 담겨 있더만요. 드라이로 지갑 구석구석을 말리고 종이류는 다림질로 반듯하게 문지르고.. 하지만 우중충하게 변색된 종이류의 색상은 원형회복이 불가능했습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요리조리 접어서 원위치로 꿰마추는 일이었지요. 퇴근하면 뭐라고 변명할까. 비자금에 대해서 넌즈시 운을 띄워 볼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깜쪽같이 오리발을 내밀 묘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수첩이나 지갑 목욕으로 낭패를 본 경험이 있는고로 우리집에서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이 고독감...^^ 서뿔리 잔머리를 굴려 그럴사하게 둘러대다가는 화려한 전과기록만 나열될 것이고 나또한 궁지에 몰리면 쥐 이빨을 드러내어 남편의 아킬레스건(비자금) 으로 비화될 소지도 있구요...^^ 이런 저런 궁리만 하다가 어정쩡하게 화장대 옆에 놔 두었습니다. 기양 서로 모른체 넘길 수만 있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히 "지갑을 두고가서 전화 할려고 했어" 좀처럼 표현이 없는 양반인데 이 말 한마디만 합니다. 한 이틀 지나서 지갑이 좋지 않아 메모지에 물이 든다며 또 한마디 합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 차렸는지. 나를 떠보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속으로 쿡쿡 웃었지요. 시종일관 시침 딱!!! 아버지 생일 이틀 전인 지난 22일, 아들들에게 쇼핑 할 시간도 없을 테니 엄마가 대신 수고 하겠노라고 넌즈시 의향을 물었지요. 두말 할 것도 없이 대찬성입니다. 사연도 많은 '지갑' 옆에 혁대를 둘러리 세운 게 지난 토요일이었답니다 05/09/26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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