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음치男 박치女의 노래방

샘터 표주박 2005. 10. 12. 01:01


지난 토요일, 시댁 사촌끼리 조촐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일년에 두세번 강남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반가풍의 안가에서 식사를 겸한 반주로 혈육의 정을 확인하는 평범한 만남인데 요번엔 셋째집 둘째 서방님이 분위기를 바꿔보자며 강남구청 부근 노래방기기까지 갖춘 '황토' 라는 곳에 예약을 하였습니다. 조촐한 음식이 코스별로 나오고, 이슬이가 몇 순배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서방님이 노래방기기에 번호를 입력하자 저의 남편만이 노래는 무슨 노래라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지독한 애주가인 고로 盞이나 주거니 받거니 돌아가기를 바라는 눈치입니다. 한마디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찬물을 끼얹는 격입니다. 이럴땐 큰집 큰며느리이자 짝꿍인 제가 나서서 중재를 해야겠지요. "서방님! 풍악을 울리세요!" 마눌까지 동참을 하니 어쩔수 없다는 듯, 다시 좌정을 하고 풍경이 되어줍니다. 돌아가며 한곡씩 부르는데 부처님 처럼 앉아 있는 '내 뼈의 원조(성서말씀)'의 18번, 조용필의 '친구여'를 입력하여 "우리 가문의 장손 18번입니다" 라는 멘트로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사정이 이쯤되니 멋적은 표정으로 마이크를 받아 가사를 읽어내리듯...역시 박치에다 음치...글고... 몸치... 하하하~ 그러자 사촌동생들이 거듭 마이크를 건네니까 '그리운 금강산'과 '제비'도 겁없이 부릅니다. 마음으로는 멋드러지게 뽑을 수 있을 것 같았겠지만 연습없이 평소 실력(?)으로 쉽게 불리워질 만만한 노래는 아니지요. 주제 파악도 못하고...호호호... 77세이신 저의 큰 시누님도 '검은 장갑낀 손'을 고운 목소리로 옛적 실력을 발휘하시고, 사위를 본 저의 동서는 경쾌한 리듬에 몸놀림도 유연하구요. 어느새 멜로디만 흐르면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합창을 합니다. 번갈아가며 서너곡씩 불렀을 즈음 둘째집 서방님과 머리를 맞대고 선곡을 하는데 남편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저곡 알지? 같이 부르자..." "...아... 그 노래...모르는데.. 정말 몰라요" 남편의 눈이 휘둥그래 지며 의아하다는 표정입니다..^^ 두어달 전 쯤? 퇴근한 남편이 현관을 들어서며 메모지를 불쑥 내밉니다. "이런 노래 알아?" 35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이렇게 황당한 질문은 처음입니다. 운전을 하는 차안에서 들었는데 노랫말이 좋아 메모를 했다나요. 빨리 알아봐 달라고 재촉을 합니다. 가사의 한 소절같은 곡명도 아리송한, 더구나 남자가 부른 노래라는 것만으로...내 참...^^ 검색창을 열고 자판을 두둘겨 보니 87년도에 발표된 유익종의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라는 곡이었습니다. 메모지에 적힌 곡명이 맞긴 맞았습니다. 물론 음원을 찾아 주었고 며칠 열심히 따라 부르며 행복해 하더군요. "곡도 좋고 가사도 좋고!" 요렇게 맞장구를 치긴했지만, 요건 어디까지나 헐리우드 액션이었지요..^^ 유익종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감미로운 음색에 젖어들면서도 가사를 외워 따라 부를 정도의 관심은 없었기에 그 후로는 그 일도, 노래도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신혼여행지에서 해변을 거닐 때, 그 당시의 스탠다드 팝송을 뚜옛으로 불러 본 아득한 추억도 있긴 합니다만, 오랜 풍랑에 시달리느라 짠물을 과하게 들이켜 서로 음치男, 박치女가 되어버린 세월입니다. 유익종의 멜로디가 흘러도 따라 불러주는 이가 없으니 쑥스러웠던지 자꾸만 나오라고 눈짓을 합니다. 우리 시누님은 "가사가 참 좋다!" 우리 동서는 "아주버님 실력 이제야 알았다!" 우리 서방님은 "우리형 정말 멋지다!" 조금전 까지 음치 박치이더니 감정처리까지 완벽합니다...^.^ 아 글씨...만점이 나왔지 뭡니까...하하하~ 마눌 모르는 사이에 연습을 많이 했나봐요...^^ 일취월장한 반백의 남편이 멋있어 보이넹! 팔불출 따로 없죠?... 호호호.. 둘째 작은집 서방님이 제 귀에다 대고 다그칩니다. "형수님, 알면서도 부르지 않은거죠? 다 알아요" "정말 몰라요. 저곡을 배우고 싶다기에 음원을 찾아 주기만 했어요" "이런 형수님을... 정말 사랑해..." "호호호... me too..."
05/10/12 -표주박~

세상 가장 밝은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  
푸르던 잎새 자취를 감추고 
찬바람 불어 또 한해가 가네 
교정을 들어서는 길가엔 
말없이 내 꿈들이 늘어서 있다 
지표없는 방황도 때로는 했었고
끝없는 삶의 벽에 부딪쳐도 봤지 
커다란 내 바램이 꿈으로 남아도 
이룰 수 있는건 그 꿈 속에도 있어 
다시 올 수 없는 지금의 우리 모습들이여 
다들 그런것 처럼 헤어짐은 우릴 기다리네
진리를 믿으며 순수를 지키려는 
우리 소중한 꿈들을 이루게 하소서
세상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 
우리 헤어짐을 노래하게 하소서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남을 노래하게 하소서
우리 다시 만남을 노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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