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오늘이 마지막이듯

후회할 뻔 했습니다.

샘터 표주박 2005. 10. 24. 15:40
손폰의 전자 시계는 8시 25분을 가르킨다. 아직 5분의 여유가 있다. 한 숨 돌리면서도 습관대로 가파른 교육관 계단을 급히 올라 레지오 회합실에 들어섰다. 토요일 아침마다 치루는 일과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환한 얼굴로 단장 데레사가 반긴다. 그리고는 뒤쪽으로 걸어 오더니 내 등을 어루만지며 "하루 앞서 강원도 다녀오셨으니 내일 같이 가요" 10.14일 구역반장 나들이 일정이 잡혔는데 하필 그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다. 안전이 최우선인 단체행사, 더욱이 강원도 두타산 무릉계 산행이므로 일정을 하루 앞당기는데 충분한 이유가 되었고 80여명이 이의 없이 13일 목요일에 출발하였던 것이다. 레지오 야외 행사 성거산 성지순례는 일요일로 잡혔고. 멀미약에 의존하며 버스를 타는 나로서는 하루 걸러는 무리이지 싶어 단장과 단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던 터였다. "이틀 쉬셨으니 우리 함께가요" 단원들도 합세하여 일제히 박수로 압력을 가한다. 이쯤되면 내 의사와 관계 없이 등떠밀려 따를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흔들리는 버스에서 비몽사몽에 시달리는 거.. 여간 번거롭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단장이하 단원들 모두가 저토록 원하는 걸... 이틀씩이나 쉬었으니 딱히 둘러댈 명분도 핑계도 없고.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내 사정을 알아줄 과부는 우리팀엔 하나도 없으니 어찌하랴.. 하하~ 이리하여 나를 포함하여 단원 12명, 장부(남편)님 3분, 협조단원에 대녀 등, 18명 대가족이 일요일(10.16) 아침 7시 30분에 6호차에 전원 탑승하였다 무명 순교자의 '줄무덤'이 있는 '성거산 성지'는 경기와 충남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579m 성거산. 깊은 산중에 칩거하였던 교우촌이다. 하늘과 땅과 바람과 새와 풀벌레와 짐승과 그리고 하느님만이 지켜주었다. 깊은 침묵의 역사속에 그 모습 감추었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성지로 명명되었고 차츰 면모를 갖춘지 8년된 곳이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곳에 숨어 있었다. 타 본당 두 곳과 우리 본당 신자등 600여명중 처음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성거산 명칭의 유래는 고려 태조 왕건이 수행원들과 함께 성환 지역에서 잠시 쉬는 동안 오색구름이 맴돌며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모습에 '거룩할 성(聖)' 자에 '거할 거(居)' 성거산이라는 지명을 하사하시고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 다고. 이후 태조 이성계와 세종대왕도 온양 온천에 목욕을 하러 올 때마다 성거산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태백산맥 깊은 준령 첩첩 산골에 숨어들어 신앙을 지켜냈던 이름없는 치명자들의 줄무덤이 있는 이곳, 산세가 깊어도 아늑하고 조망이 아름다워 비록 등떠밀려 왔지만 다시 찾아 오고싶은 곳, 오지 않았으면 후회하였을 곳으로 오랜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래글은 성거산 성지 홈피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1959년 성거산 정상에 미 공군기지가 주둔하면서 도로를 개설 당시 도로상 에는 300기 이상의 묘가 있었다고 한다. 이 300기 이상의 묘는 이 지역의 연로한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교우촌 에서 죽은 신자들과 이 지역사람 들의 시신을 묻은 묘라고 한다. 그러나 이 묘 중에서 꼬리가 없는 묘는 전부 순교자 묘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도로 개설시 이 묘를 이장 할 때 한국인 6명과 미 공군 장병 트렉터 운전사 1명, 모두 7명이 무명 순교자 묘라고 하는 꼬리 없는 묘를 지금의 무덤에 이장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장한 묘수는 모두 107기라고 증언하였고, 6분의 증언을 들어 보면 한결같이 묘에서 묵주와 십자가 고상이 나왔다고 한다. 더욱 확실한 증언의 이야기중에 시신의 뼈가 목따로, 몸따로 묻혀있었다는 이야기는 일치된 증언들이 있다. 서울 상도동에 사는 배순자씨는 배문호 순교자의 5대 후손이다. 이분의 증언을 들어 보면 당신이 결혼 한 후 소학골에 사시는 어른들께 인사차 내려왔다가 어떤 외국 신부님이 이 산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강론중에 이 곳에 83명의 무명 순교자가 묻혀 있으니 어렵고 힘들때 이 무덤에 와서 기도 하라는 이야기를 대화 중에 스스로 증언하였다. 이 미사를 드리신 신부님은 그 당시 이곳이 안성 본단 관활로 안성 본당 신부님이신 공안국 (베드로)신부님으로 추정이 된다. 이 외에도 여러 증언이 있지만 이것으로 생략하고 이곳에는 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시신이 묻혀있는 곳은 틀림이 없다. -이상 홈피에서..
순교자의 길로 접어들자 이름모를 치명자의 줄무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비장한 마음으로, '성거산 성지 기도문'을 바쳤다. 오솔길 따라 등불로 형상화된 103위 한국순교 성인들의 등불, 54개소에 설치된 그분들의 넋을, 이름과 본명을 호칭하며 바친 우리들의 기도는 틀림없이 우리들의 신앙을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되리라....다짐해 본다.
05/10/24 -표주박~ *성거산 성지 로고를 클릭하시면 홈피로 안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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