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커피 한잔 주세요!

샘터 표주박 2006. 3. 25. 07:41
오늘은 수요일, 봄학기 서울대 교양강좌 2번째 날이다. 엘미노 9일 기도를 마치고 집에오니 12시다. 아무리 서둘러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이용해도 영상물이 상영되는 1시까지 입실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영상물은 어쩔 수 없고 2시 본강의에나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서울대역에서 시계를 보니 1시 15분, 눈에 익은 출구로 올라왔는데 아뿔사.. 반대쪽에 서 있는 게 아닌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가 또 올라가서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할 생각을 하니 맥이 빠진다. 어차피 본강의는 몇 분의 여유가 있으니 차라리 걷자! 마음이 넉넉해 진다...^^ 햇살도 따사롭고 행인도 많지 않은 오르막 길을 5분쯤이나 걸었을까 싶은데 어느새 등줄기가 축축해 지고 옷 무게가 느껴진다. 집에서 급하게 점심 한 술 뜨고 나온게 춘곤증까지 불러왔는지 걷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화사한 봄 햇살과의 입맞춤으로 몽실하게 부푼 개나리 꽃망울도 곧 터질 것만 같은데 내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서울대 자판기 커피는 150원이다. 가끔은 하얀거품을 올린 카푸치노(1800원)의 부드러움과 새콤 달콤한 와풀도 곁들여 마시기도 하지만, 자판기에서 뽑은 향긋한 카페오레 한잔을 홀짝거리며 강의실로 향하는 재미도 꽤 괜찮다. 언제 부턴가 올라가면서 한잔은 필수이고, 강의가 끝난 후에도 한잔 빼들고 걸으면 젊음이 전이 된 듯..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그래봐야 300원. 값도 싸고 맛도 좋고... 한잔 유혹에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가방속에서 50원짜리 동전도 손에 잡힌다. 150원을 주입하고 습관처럼 버튼을 눌렀다. 내려진 커피를 막 꺼내려는데 옆에 설치된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용무를 보던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커피 한잔 주세요!" 낯이 익다. 작년 가을학기 강좌에서 교수님께 몇 번 질문을 하던 그녀... 이미 커피가 담겨진 종이컵을 꺼내 손에 들었던 터라 "카페오레인데 먼저 드릴까요?" "난 카페오레는 안먹어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가방을 뒤적여 백원짜리 두개를 꺼내 자판기에 넣었다. "메뉴는? 직접 누르시겠습니까?" "제가 누를께요. 50원 제가 갖겠습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뭘 봐' 하며 얼른 가라는 눈치다.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기세에 눌려 오히려 내가 머슥해 진다...^^ 얼른 고개를 돌려 박물관을 향해 걸으며..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웃지? 어...? 그러고보니... 강의 끝나고 교수님께 말꼬리를 잡던 질문도 엇박자였잖아? 현금자동인출기에서 빼낸 돈이 고액권이라 동전이 없을 수도... 그녀도 나처럼... 내 얼굴이 낯설지 않아 커피 한 잔 부탁했을 수도... 그래... 당당함이... 오히려 좋다!
06/03/25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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