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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주박의 散文노트

이런거... 어때요?

샘터 표주박 2006. 4. 9. 12:56
▲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김문식 신병주 지음. 돌베게 펴냄 매주 수요일,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교양강좌가 있습니다. 오후 1시부터 영상물 상영이 있고, 본강의는 두시부터 4시까지입니다. 지난 주에는 '조선의 기록문화 의궤'였습니다. 김문식 교수님의 저서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를 중심으로 이어진 120분간 강의실은 열기로 가득했다고나 할까요. 4월 12일, 붓으로 섬긴 왕(어진 제작 및 진전 설치),조선미(성균관대학교) 교수님의 강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관악 캠퍼스로 봄나들이 권해 봅니다...^^ 의궤(儀軌)란 무엇인가? 조선왕조의 국왕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였으며 왕위를 후계자에 물려주지 않는 한 사망할때까지 왕의 자리는 종신직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운명은 왕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좌우 되었고 따라서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는 국왕의 막강한 권한을 규제 할 방안을 생각했다. 그 방안의 하나로 국왕의 교육과 철저한 기록이었다. 조선의 국왕은 왕자로 태어나 죽을 때 까지 교육을 받았다. 왕의 나이와 신분에 따라 왕자로 자라는 보양청 교육은 '보양청일기'로, 5세 까지의 초기 강학청 교육은 '강학청 일기로', 세자교육을 서연이라 하여 이는 '서연일기'로 기록되어 관리 되었다. 왕이 받는 교육은 경연(經筵)이라고 하였다. '경연일기'인 조선왕조 실록은 왕이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편찬되었으며 후대의 국왕은 선왕의 실록을 볼 수 없게 함으로서 사관의 신분도 보장하고 기록의 진실성도 확보했다. 의궤는 보통 5~9부 내외를 제작하여 여러곳에 나누어 보관했다. 어람용 의궤는 통상 1부가 제작되었으며 정조 즉위년 1776년 규장각이 설립된 이후, 주로 규장각에서 보관 했다. 분산용 의궤는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국가 전례(典禮)를 관장하던 기관과 서울과 지방의 사고(史庫)에 분산 보관되었다. 의궤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다 조선조의 그런 놀라운 기록문화의 꽃 가운데 하나가 의궤다. '의식'과 '궤범'을 합한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모든 주요 행사를 선대에 행한 사례를 토대로 시행했다. 이를 위해 임시기구까지 만들어 모든 국가행사에 관한 일체의 내용들을 치밀하고 구체적인 그림과 글로 남긴 것, 그것이 바로 의궤다. 주요한 국가 행사를 대상으로한 의궤는 행사기간 중에 국왕이 내린 명령서, 업무를 분장한 관청간에 오간 공문서, 업무 분장상황, 업무담당자의 명단, 행사 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 소요물품, 경비의 지출내역, 유공자에 대한 포상 상황을 모두 기록하여 국가의 재정이 낭비되거나 딴 곳으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의궤에서 발견되는 또하나의 특징은 아름다운 기록화이다 의궤에는 행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반차도나 각종 건물 또는 물품의 모습을 그린 도설이 호록되어 있다. 통상 천연색으로 그려진 이 그림들을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고 문자 기록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하는 물품의 세부 사항까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의궤는 기록과 그림이 어우러진 종합적인 행사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의궤는 사진이 없던 시대의 정교한 시각 기록물일 뿐 아니라 김홍도, 김득신 등,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참여한 그림들은 그 자체로 뛰어난 예술적 경지이다. 세계에서 이런 의궤를 제작하고 보관한 곳은 조선뿐이다. 이 땅이 기록문화의 후진국이 된 것은 근대 식민지시대와 전쟁을 겪고 난 이후의 일이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 땅을 밟았던 프랑스군 장교 주베르는 탄식했다. "이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물품 중에도 의궤들이 들어 있었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191종 297책을 1975년 파리 국립도서관 촉탁직원으로 일하던 한국인 박병선씨가 발견해 비로소 세상에 알렸으며, 한국-프랑스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문화재 반환 공방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화성의궤, 을묘의궤 속 조선후기 사회상을 재구성 화성성역의궤는 수원성(화성)의 공사 보고서다. 화성건설 계획에서부터 공사비, 진행상황, 그리고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기록한 것은 물론, 그림을 덧붙여 이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공사비에 대한 대목에서는 석공 김 아무개가 어느 현장에서 몇일을 일하고 품삯을 얼마 받았는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생생 하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가 당시 한창 건축 중이던 화성의 건설현장을 살펴볼 겸 회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참배하기 위해 수원으로 행차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건 바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때문이다. 화성 건설의 모든 과정과 소요 자원 등을 그림으로 그리고 설명한 공사보고서인 의궤가 있어서 훼손됐던 화성의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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