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이것좀 싸 주세요

샘터 표주박 2006. 5. 12. 01:01
이것좀 싸 주세요 수요일, 서울대 박물관 교양 강좌가 있는 날이다. 출석 첵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번이나 빠졌기에 '오늘은 가야지' 다짐하며 10시 평일미사 참례를 하였다. 파견성가를 마치고 미사보를 접는데 옆에 앉았던 헤레나가 귓속말로 "형님, 내일 오프닝에 함께 가요" 목요일, 꾸르실료 수강자가 교육 들어가는 날이다. "빨랑까만 할께... 전해 줘..." 성물부에서 예쁜 카드에 축하 멧세지도 정성껏 쓰고, 포장을 한 후 부간사에게 건네주고 서둘러 성모상 앞을 몇 걸음 벗어났는데 "형님, 잠깐만!" 조금전에 헤어진 말가리다 총구역장과 헬레나 부간사가 손짓을 한다. 영문도 모르고 멈춰섰다. "같이 갈데가 있어서요" "?" 어차피 지하철을 타야 하므로 내 팔뚝을 맡긴채로 성당 문을 나섰다. 첫번째 골목 어귀에서 복지관 봉사로 독거노인을 돌보는 율리아나를 만났다. 조금 더 가다가 이번엔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이렇게 해서 일행이 다섯명이 되었다. 교우 부부가 운영하는 음식점앞에서 멈춘다. 그제서야 '잠깐만'으로 내 팔뚝을 붙잡은 이유가 드러났다. 아직 점심을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넓은 홀은 우리들만의 차지다. 식사 준비가 덜되어 시간이 좀 걸리겠다는 주인장의 말씀에도 "시간은 얼마든지 줄테니 맛나게만 해 달라"고 너스레를 떤다. 오늘도 서울대 교양강좌에 가기는 아예 '글렀다' 포기를 하니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늘 보는 얼굴인데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이야기 꽃이 싱그럽기만 하다. 한 30여분 동안 나이를 잊은채 까르륵 숨들이 넘어간다. 손주 손녀를 둔 중간 할머니들의 거침없는 수다는 연륜의 두께만큼 깊은 맛이 배어난다. 드디어 커다란 냄비 2개에 먹음직스런 콩비지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정갈한 반찬이 10가지나 줄을 잇는다. 시골서 따온 귀한 '참두릅 된장무침'을 우리에게만 특별 서비스하는 거 라는... 주인장의 자상한 설명에 젓가락이 더욱 분주해 진다. 각자 앞에 놓여진 그릇에 콩비지를 양껏 덜어 먹었음에도 두사람이 더 먹을 만큼 남았다. "이것좀 싸 주세요. 제가 돌보는 할머니 갖다 드리게요" 九旬을 바라보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독거노인 할머니 점심까지 챙기는 율리아나의 고운 심성에, 돈독한 신앙심에,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냄비에 다시 담아 드릴게요" 반찬도 몇가지 더 곁들여서 들고가기 좋게 냄비를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싸 달라고 하는 사람, 더 싸 주는 사람, 흐믓한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 하느님 보시기에 이 얼마나 '고운 모습들'인가...^^
06/05/12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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