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나이듬을 뽐내시네..

샘터 표주박 2006. 8. 2. 22:59




긴긴 장마가 꼬리를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글거리는 태양이 폭염을 쏟아내며 가마솥 더위를 방불케한다. 이번 장마는 기간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평년보다 10일 이상 비가 더 내렸고 이에 못지 않게 강수량도 전국 60개 주요지점을 공식적으로 관측하기 시작한 1973년 이래 최대기록이라고 한다. 이렇게 지루한 장마 끝에 밀려온 폭염이기에 아직은 반갑다. 그럼에도 불쾌지수와 자외선 지수를 첵크하며 열대야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불면의 밤'에 지레 겁을 먹고 더위를 지혜롭게 피하는 방법에 몰두하는 이 나약함을 어찌하리...^^ 그러고 보면... 들녘의 곡식들은 낱알이 더욱 실해지고 과수의 육즙은 단맛을 더해 가는... 여름은 분명 축복받은 계절인데... 어디 그뿐인가. 때때로 폭염을 식혀줄 한줄기 소나기, 파아란 하늘에 피어난 무지개, 바닷가의 파도 소리와 하얀 모래사장, 계곡사이로 도란거리며 흐르는 물소리, 골짜를 타고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 그리고 별과 달과 이슬과 이름모를 풀꽃들과 풀벌레 소리의 앙상불... 이 모두가 이 계절을 통해야만 숱한 추억을 잉태시키고 성숙시키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가 수묵화를 그려내는 이 계절이 아닌가. 8월의 태양! 우린,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는 행운아들이다. 폭염이 쏟아지는 팔월 초 이튿 날, 아침부터 햇살이 이글거린다. 미리 겁먹은 기분을 전환도 할 겸, 줄줄 흐르는 땀을 달래기도 할 겸, 엊그제 정갈하게 손질 해 놓은 모시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지난 봄 세일 때, "당신 그렇게 높은 거 신어도 되겠어?" 마누라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건드리는 짝궁을 향해 '내 인생의 마지막 하이힐'이라고 선언(?) 하며 구입한 샌달과 은색 핸드백도 챙기고 조신조신 성당 언덕을 오른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즐겨입는 이 옷은, 칼럼'오늘이 마지막이듯'때 부터 인연을 맺은 신림동 독자님이 지어서 보내주신 옷이다. 벌써 3번의 여름을 맞는다. 디자인도 할머니들의 그것이 아닌 얌전한 칼라의 개량 블라우스 저고리라고나 할까. 모시 옷은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할 뿐만 아니라 촉감도 깔깔하고, 입는 기분또한 말이 모자랄 만큼 상쾌하다. 단아해 보이는 옷이기에 만나는 교우마다 한마디씩이다. "참 보기 좋아요. 손수 손질하셨나요?" 미사가 끝나고... 친교 시간... 절친한 어느자매가 정곡을 찌른다...^^ "부지런해야 입는 옷인데. 나이듬을 뽐내시네..." 맞어... 맞어... 들켜뿌렸당...하하하~
06/08/02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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