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영어가 더 편해요

샘터 표주박 2006. 10. 11. 09:31




추석 날, 차례를 마치고 정오가 지난즈음, 조카딸 가족 세식구가 친정 큰집인 우리집에 인사를 온단다. 집근처에서 전화를 했는지 얼마되지 않아 잠든 찬영이를 안고 현관으로 들어선다. 한복 차림이 곱다. 찬영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외삼촌도 차례를 마치고 큰집에 머물고 있던 터라 온 가족이 일어나 반가이 다섯살짜리 찬영이를 맞아 들였다. 잠에서 덜 깬 찬영이가 외갓집 할아버지 할머니들 시선에 둘러싸여 어리벙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마저도 귀엽다. 지난 구정에 세배를 다녀 갔으므로 몇 달 못본 사이 제법 의젓해 졌다. 찬영이는 아직 아우가 없다. 게다가 친삼촌도 외삼촌도 모두 미혼이므로 어디를 가나 귀여움 독차지다. 아침에 제사를 지낸 밥이 많음에도 조카네 가족을 위해 햅쌀로 새밥을 지으며 이것 저것 덥히고 지지고 볶는데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던 찬영이가 주방에 얼굴을 내밀며 빙긋이 웃는다. 큰외할머니도 관객이 되어 달라는 무언의 신호다 싶어서 일손을 멈추고 박수를 쳐주었니 구령이 더 힘차다. 점심상이 차려지고 십여명이 둘러앉았는데 찬영이는 바쁘다. 선채로 한술 떠 주는 밥을 입에 물고 컴퓨터로 부지런히 오간다. "앉아서 밥먹어야지" 아빠가 한마디 한다. "게임하려구요" 또 한입 받아 물고 쪼르르 달려가 컴 앞에 앉는다 "그럼 야후로 들어가서.... 아후 칠 줄 알지? 케이알 점 와이에이에이취오오 점 씨오엠...." "네" "한글로 야휴 치라고 해..." 내가 끼어들었다 "찬영이는 영어가 더 편해요" "이게 뭔 소리야?" "영어 공부를 더 많이 해요" ".........." 엄마가 영문과 출신이 아니랄까봐 영어를 먼저 가르쳤나 보다. 다섯살짜리에게... 케이알 점 와이에이에이취오오 점...이라니... 한글로 '야후'를 치라고 가르쳐도 될텐데.. 하는 아쉬움... 하긴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이 지나친 영어위주의 교육으로 국어실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긴 했지만 먼 강남 이야기가 아닌, 내집에서도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지 않은가? 머지 않아 아들이 장가를 들어 손주가 태어나면 내 며느리도 가나다... 자음과 모음 대신 알파벳부터 가르친다면? 자랑할 일인가? 나무랄 일인가? 아니면 묵인?
06/10/11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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