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새하늘 새땅

샘터 표주박 2001. 11. 4. 20:02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나야. 아우님 갑자기 볼 일이 있어서 내일 아침에 서울 올라가는데 11시 미사 후 성당에서 잠시 얼굴이라도 보자"


-형님, 요즘 병원에는 나가고 계신가요?

"나 어제부터 며칠 휴가 받았어. 아우님. 수술 받았다고? 어제 대모님께 안부전화 드렸더니 그러시더군. 내게도 알리지 그랬어. 섭섭하네 자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다지만 아우님 병원에 갈 시간이야 없었겠나? "


-형님. 전 간단한 수술이었어요. 한달 간격으로 두 번 수술했지만 간단한 수술이기에 친척에게도 알리지 않은 걸요. 섭섭하셨어요? 죄송해요

"내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하자"


버스를 타고 동인천 역까지 와서 전철을 갈아타고 청량리에서 또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오려면 적어도 두시간 반은 실히 걸릴 거리인데 미사시간에 맞춰 오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될 것 같다. 워낙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 당신 눈으로 내 모습을 확인하고 싶으신가보다.




10년 전 봄볕도 따스한 어느 날.
바오로와 함께 미사참례하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오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어깨까지 들먹이며 몹시도 흐느끼고 있었다. 복받치는 설움을 억제하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모습이 너무도 안스러워 나도 모르게 그 분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눈을 감았다.


[주님. 이 분을 당신께 봉헌합니다.
저는 이 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만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겠지요?
이분 가슴속에 박혀 있는 아픔과 슬픔을 치유해 주시고 지금 흘리는 이 눈물이 마지막 눈물이 되게 이 미사를 통한 은총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멘]

하고 기도를 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교우들이 한사람 두 사람 자리를 뜨느라 잠시 어수선했던 성전이 다시 정적에 잠기고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얼마간 침묵의 시간이 지나자 손수건으로 가렸던 얼굴을 절반쯤 열며,


"애기 엄마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애기 엄마. 여기에 좀더 앉아 있어도 됩니까?"

-네. 오후 4시에 중 고등부 미사가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계셔도 됩니다


"전 오늘 성당에 처음 왔어요"

-네 그러셨군요. 참 잘 오셨습니다.



나는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를 기다리며 그분을 위하여 묵주기도 15단 바치고 있었다. 또 다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고 이윽고 그 분은 내게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성당에 오기까지의 기나긴 사연을 조심스레 털어놓기 시작했다.


전북에서 태어나 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향 청년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나, 막내아들이 고등학교를 입학 할 무렵 아이들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떠났다고 했다. 홀로 두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보람 하나만으로 온갖 어려움도 이겨내며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도 공부를 잘해 주어 큰딸은 대학 졸업후 곧바로 결혼을 하였고, 대학을 다니는 아들과 단 두 식구 별 어려움 없이 살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아들이 대학 3학년 때, 느닷없이 같은 학교 여학생을 데리고 와서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졸라 여자 쪽 집안과 의논하여 결국 결혼을 시켰단다. 딸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시집가 서운하던 차에 그 빈자리를 며느리가 채워주어 기쁨으로 맞아 들였다고 했다. 아들은 결혼하고 군입대. 제대, 복학, 졸업후 대기업에 입사하여 1남 1녀를 두었단다. 돌이켜 보면 그 기간이 당신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꿈 같은 시기였다고 했다. 며느리와 고부간이 아니라 친딸처럼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아들 나이 막 서른 살이 된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한 아들이 점심 때 병원 영안실에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다는 연락을 받았단다. 근무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옮겨져 손 쓸 틈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남편이 떠난 슬픔보다 아들을 잃은 아픔이 더 컷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 잃은 슬픔이 제 아무리 쓰리고 아파도 나이 어린 며느리를 생각하면 마음놓고 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 저 어린것이 이 모진 세상을, 이 한 많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2년간은 그래도 행복은 있었던 것 같았단다. 시어머니는 병원 중풍환자 간병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며느리는 아이를 키우며 서로 버팀목이 되었노라 고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어렵사리 꺼낸 몇 마디 말에 넋을 잃었다고...

"어머니. 제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지금 임신 3개월입니다. 그 사람은 총각...."


땅이 꺼지고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과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냈을 적보다 어쩌면 더 큰 충격이었고 괴로움이었다고 했다. 며칠 몸부림치며 울었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아이까지 가졌으니....
만약 며느리가 내 딸이라면 내가 이다지도 아파했겠는가? 며느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무슨 권리로 막을 수 있는가? 수 없이 자신에게 자문하며 며느리를 딸처럼 여겼다는 말도, 불쌍해서 가슴아프다는 말도 다 입에 발린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며느리가 재혼을 하면 저 아이들은 찬밥에 도토리가 되겠지.... 내 아들이 남긴 저 두 목숨 누가 거두나... 몸부림치며 며칠 밤낮을 보내다가 두 사람을 불렀단다


"친 딸 같은 에미가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결혼하거라. 그런데 조건이 있다. 저 두 목숨 네 자식이니 네가 거둬라. 난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능력도 없을 뿐 만 아니라 먼저 가고 나중가는 것은 알수는 없지만 나이로 봐서 네가 나 보다는 오래 살지 않겠느냐. 할미가 맡았다가 할미가 또 세상 떠나면 저 두 목숨 너무 불쌍하니 아이들은 에미가 맡아 다오. 그 대신 살고 있는 이 집은 물론이고 조금씩 저축 해 두었던 예금통장도 에미에게 모두 줄 터이니 아이들 잘 키워다오. 나는 입을 옷만 몇 가지 챙겨 서울 언니 집 지하 방이 마침 비어 그곳에 있겠다. 다행히 아직 건강하여 병원일 할 수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말거라. 아이들 잘 부탁한다"


말을 마치고 트렁크에 입을 옷 몇 가지를 주섬주섬 담아 가지고 언니 집 지하 단칸방에 보따리를 풀었다고 했다. 언니는 개신교 권사지만 식음을 전폐하며 괴로워하는 동생에게 어렸을 적부터 동경하던 성당이라도 한번 가보라고 권했다고 했다. "성당" 이라는 말이 귀에 박히며 스쳐 가는 섬광,


'그래 맞아... 내가 마지막으로 성당에나 한번 가보고.....'


며느리에게 집과 통장과 손주들을 다 맡길 때 이미 마음속으로는 생을 마감하리라 다짐했었다고 했다 . 이 아픈 긴긴 사연을 들려주면서 가슴속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애기 엄마. 오늘이 우리 며느리 결혼식 날입니다. 성당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를 하고 이 약을 입안에 털어 넣으려고...."



나는 또 두 눈을 감고야 말았다.


[오. 하느님.
성전에서 제게 들려주는 이분의 절규... 주님 들으셨지요. 주님 도와주소서.
이 분의 마음을 돌이켜 주소서.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어 어둠의 유혹에서 구해 주소서.
이분의 이런 마음을 돌이켜 주시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있음을 알게 해 주소서.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으며 이 여인의 삶에 천국은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 사랑만을 믿습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시어 이 분을 참 삶의 길로 인도해 주소서.
우리는 사는 것도 주님의 뜻이고 죽는 것도 주님의 뜻이오니 이 불쌍한 영혼 주님께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 한번 청하오니 이분의 마음을 돌이켜 주소서]


어깨를 감싸안고 눈물로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애기 엄마, 저 십자가의 예수님이 나 보고 한번 살아 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군요
성당에 다니고 싶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오늘 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미 교리가 절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녀님께서 배려 해 주시어 통신교리를 병행하여 그해 여름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맨손으로 다시 삶을 일구어 손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옆에 자그마한 연립주택도 장만하여, 아이들의 양부를 친아들처럼 여기며, 아직도 병원일을 하고 있으며, 그 기막힌 손주가 고3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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