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散文노트

한 점, 걸어두고 싶다

샘터 표주박 2007. 1. 9. 21:38






작년 연말을 앞둔 포근한 어느날, 데레사 할머님의 정중한 초대를 받았다. 
작은 아드님이 고대옆에 건물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 꽤 괜찮아 보이는 
'낙지볶음'체인점이 들어와 성업중이라는 말을 들으셨단다. 
먹어보지 않아 맛은 모르겠으나 연말도 되었으니 명색이 건물주 에미이므로 
그곳에서 점심이나 먹자는 말씀이시다. 
데레사 할머님은 교리반 봉사를 통하여 인연을 지은 탓으로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를 '교리 선생님'이라 부르신다. 할머니의 말씀에 몇 차례 사양을 
하였으나 한번 말씀을 내놓으면 거두시는 분이 아니기에 따르기로 했다.
오랜동안 불교에서'보시'로 덕을 쌓으신 분답게 천주교 교리중에도 여러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당시 이미 고희를 넘기신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매일미사 참례는 
물론이고 젊은이들도 힘겨워하는 루가복음 쓰기, 교리문답 쓰기, 신구약 읽기
등을 모두 섭렵하시어 영세식 때 '특별 교리상'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세례식' 
5일을 앞두고 대퇴골 골절상으로 대수술을 받았고 그로인해 일년이나 병상에 
계셨다. 
주임신부님께서 병원을 방문하시어 '영세'를 주시고자 했으나 할머니께서
"영광스런 세례식을 거룩한 성전에서 받으시겠다" 고 극구 사양하시어 기어이 
1년 후, 휠체어에 의지하여 성전에서 세례를 받으실 만큼 꼿꼿하고 남다르신 
분이시다.
작은 아드님 건물 1층'아구찜' 체인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난 후..
"둘째 아들집이 이 건물 5층인데 내 올라가 볼테니 여기 계시우"
아무리 만류하여도 지팡이에 의지하며 5층으로 올라가신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올라가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 뒤따라 
한계단씩 따라 오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온다고 전화를 넣으면... 청소하고 난리를 피우니까... 아들 며느리에게 
성가시게 하지 말아야해..."
심호흡을 내쉬며 하시는 혼자 말씀이다. 5층에 오르자 벨을 누르신다. 
다행하게도 안에서 '누구세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다."
"어머나.. 어머님 전화를 주시지 그러셨어요. 친정에서 동지죽을 쑤었다기에 
애비랑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데요. 힘들게 오셨는데 어쩔뻔 하셨어요" 
"누구 하나는 있을 줄 알았어!"
할머니는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시며 엉거주춤 서있는 내게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성당 교리 선생님이시다. 여기는 둘째 며느리고 여기는 대학원 졸업반인 
손녀딸이고... 어서 들어오세요."
잘 정돈된 넓다란 거실의 푸근한 소파에 앉으니 벽에 걸린 자그마한 그림
한점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박수근 그림?' 
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림에만 관심을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내 손녀따님이 아침에 구웠다는 고소한 쿠키와 따순 찻와 과일이 다반에 
차려져 나오고 고부간의 대화가 차향만큼이나 향그럽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가고 사람사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즈음, 
"저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요. 눈에 익어서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액자 앞으로 다가 섰다. '박수근의 세여인'과 비슷한 
구도 인데 오래묵은 듯한 그림은 아니지 싶었다. 잉크냄새가 풍길 것만같은 
그런 묘한 느낌이다. 작가 싸인도 선명한데...
"이 그림은 한국에서 제일 값나가는 화가 작품이잖아요"
"네.. 박수근님의 판화예요. 그렇게 비싼 작품이 아닙니다"
여러 이야기 끝에.. 알고보니 며느님은 서양 화가로 며칠전 인사동 화랑에서 
동인들과 전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전시회 정리가 덜되었다며 풍경화(유화) 
한점을 들고나와 보여 준다. 바람부는 들판을 화폭에 담았는데 부드러운 
'평화'가 느껴진다. 작가의 내면도 저와 같으리라...^^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그댁 거실에 걸려있는 '박수근'의 판화가 눈앞에 
아른 거린다. 도대체 그 작품은 얼마나 나갈까? 
그 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박수근 억대 작품 말고 50만~100만원짜리도 많다'는 제목으로 2006/04/10,
기사를 접할 수가 있었고.. 그러고보니 기억 저편으로 뭍혀버린 기사였다.. 
                                                   07/01/09
                                                   -표주박~
10억 4천만원에 팔렸다는 박수근의 '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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