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본당은 사순 40일 동안 미사전 고해성사외에는 별도의 성사가 없으므로 미리미리 죄사함을 받으려는 신자들로 고해소 앞에 늘어선 줄이 상당합니다. 그 긴 줄 앞을 지나치려니 뒤꼭지가 부끄럽습니다...
'넌 죄사함, 받을 일이 없냐?' '너에게 잘못한 이, 용서는 다 했냐?' '그와 화해는 했냐?' '마음에 진 빚은 없냐?' '과욕을 부린적은 없냐?' '말로 상처를 입힌 일은 없냐?' '생각으로 지은 죄는 없냐?'
어찌 없겠습니까...... 얼마전에 성사를 봤다는 이유로.... 매일 미사를 바친다는 이유로... 긴 줄 앞을 지나치기가 송구스러울뿐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화해를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보름전전 날, 다섯가지가 넘는 묵나물을 불리고 삶고 우리고, 찹쌀, 팥, 수수, 서리태 좁쌀등 다섯가지 곡류를, 아들네도 보내고 교우들과도 나눔을 하려고 퍽 많이 준비했는데 하필이면 그날 밤에 어지러움증이 도져 밤새도록 신음하다가 도저히 머리를 들 수가 없어 날이 밝자 반장 대녀를 불러 다 가져가 나누어 먹으라고 케리카에 바리바리 실려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병원행.
어쩝니까.... 어차피 나누어 먹으려고 봄, 여름, 가을, 내 손으로 말린 제철 나물 몇가지에 김장 부산물인 시래기에 가지, 호박, 고사리 등입니다. 얼마전 코스트코에서 4.5K짜리 찹쌀도 샀겠다 잡곡은 늘 있기에 푹푹 쏟아 푹 불린것들입니다.
병원에서 주사맞는 동안 여기저기서 잘 먹겠노라는 전화가 빗발칩니다. 언젠가 부터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마음속으로 경계를 하였던 자매도 포함되었습니다.
"주님! 제게 극도의 어지러움을 주시어 ㅇㅇ자매와 화해하도록 이끌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이 곤두박질 치고 온 몸이 구덩이로 빨려드는 고통이 없었다면 '보름 나눔'에 그 자매는 전혀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저의 어지러움증으로 인해 대녀를 통해 올해는 완전한 화해성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아멘..."
2015/03/08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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